[오션 뷰] 해운사를 통해 본 HMM의 향방
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대학원 해양역사문화전공 교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는 해운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역대 정부는 자국 화물 자국 선박 우선 적취제, 국기 차별, 계획 조선, 해기사 병역 특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마련해 해운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 왔다. 이러한 정책들의 시행 결과 1970년대에는 해운업이 급성장했다. 선박만 확보하면 수출입 화물을 먼저 선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물과 상품을 수출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앞다퉈 중고선을 들여와 해운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해 해운 불황이 찾아오면서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해운업계에 자금을 대출해 준 은행들까지 쓰러질지 모르는 연쇄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1980년대 중반 ‘해운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해 업체 간 통폐합을 유도했고, 그 결과 115개에 달하던 외항해운업체가 34개 사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집단 도산의 위기에서 벗어난 외항해운산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완만하게나마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 98% 해상 운송
원양 컨테이너 국적 선사 보유할 필요
중요성 감안 HMM 완전 민영화보다는
정부·공기업 일정 지분 보유 더 바람직
1995년 무역자유화를 기치로 내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정부 주도의 보호육성 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해운산업 보호 정책의 근간이었던 ‘해운산업육성법’마저 폐지됐다. 이후 19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원인 중 하나로 대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지목하고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 SK해운, 한진해운, 조양상선 등 주요 해운사들이 보유 선박을 매각하고 자본을 증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과정에서 2001년 조양상선이 파산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정부는 ‘제주선박등록제’, ‘선박투자회사제’, ‘톤세제도’ 등을 도입해 해운업계가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우리 해운기업들은 2003년 중반부터 이른바 ‘중국 효과’로 초호황을 누렸다. 2004년 1261만 총톤이던 우리 외항선박량은 2010년 2806만 총톤으로 2.2배 증가했고, 한국해운협회 회원사 수 또한 2004년 50개 사에서 2010년 181개 사로 3.6배 늘어났다. 이처럼 배만 확보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해운업계는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는 이른바 ‘다단계 용선’ 계약이 성행했다. 이에 해운선사와 해사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운시장에 뛰어들었고, 급기야 시장에서 배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직접 배를 만들기 위해 조선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대비한 중국의 경제 활황으로 촉발된 중국 효과가 끝이 나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2008년 세계 경제는 침체로 급반전됐다. 초호황을 누렸던 해운업계는 다시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고 이에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외항해운업 등록 기준을 5000톤, 5억 원에서 1만 톤,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한편,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해 선사의 선박을 매입해 재용선하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또한 해운회사별로 채권단의 신용위기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원 정책을 차별화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은 법정 관리에 들어갔으며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111개 해운회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 대한해운은 SM그룹, 팬오션은 하림그룹으로 경영권이 각각 넘어갔다.
현대상선은 자동차 선대, LNG 선대, 컨테이너 터미널 등의 자산을 매각하며 경영 정상화를 추진했으나, 결국 KDB산업은행에 주식의 40%를 매각하고 나서야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2020년 사명을 HMM으로 변경하였으며, 현재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67%의 지분을 보유한 국영선사로 운영되고 있다. 2023년에는 KDB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HMM의 주식 매각을 시도했지만, 이는 무산된 바 있다.
수출입 화물의 98%를 해상으로 운송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양 컨테이너 선사를 보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해운업에서 HMM이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긴요하고 특별해졌다. 하지만 해운업은 변동성이 심해 미래를 전망하기 어렵고, 호황기보다 불황기가 더 길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HMM을 완전 민영화하기보다는 대만의 양밍이나 독일의 하파그로이드 선사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정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