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평화가 곧 승리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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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우크라이나 전쟁 1000일 맞았지만
미사일 공격, 핵 위협 등 확전 양상

한국 정부, 전쟁 개입 신중한 자세를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호가 최우선

철저하게 국익과 실용에 초점 맞춰
외교·안보 정책 재정비해 나가야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19일 1000일째를 맞았다. 일상을 파괴하고 삶터를 폐허로 바꾸는 것이 전쟁이다. 인간 이성을 비웃는 듯, 전쟁의 불길은 지금 더욱 맹렬한 기세다. 최근 열흘 사이 이 전쟁의 양상은 전례 없을 만큼 급박해졌다.

무엇보다 무기의 체급이 달라졌음이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7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에이태큼스(ATACMS·육군 전술 미사일 체계)의 사용을 허용했다.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큼스는 단 한 발로 축구장 3~4개 크기의 지역을 초토화한다. 우크라이나는 사용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러시아 본토를 타격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스톰섀도도 등장했다. 레이더망을 피해 목표물을 정밀 타격하는 공대지 순항 미사일로 러시아 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서방 무기다. 우크라이나는 21일 북한군이 집결한 쿠르스크 지역으로 스톰섀도를 날렸다.

당연한 수순이겠는데, 러시아는 즉각 보복 조치를 다짐했다. 먼저 핵 교리(핵무기 사용 규정) 수정에 나섰다.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 지원 아래 러시아를 공격하면 모두 핵 공격 대상으로 삼겠다’는 게 골자다. 실제로 러시아가 22일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처음으로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ICBM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전 세계가 순식간에 ‘핵 공격’을 걱정해야 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느닷없는 확전의 기로에 선 이 전쟁의 내막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전문가들의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의 결정으로 시작된 전쟁의 질적 변화는 러시아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히 위험천만한 방향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정부는 신중해야 한다.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과 군 참관단 파견 방침 등 대응책을 밝힌 바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러시아가 25일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면 양국 관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한국에 경고했고, ‘전쟁 종결’을 다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도 한국의 대응 방식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마당에 확전에 개입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군이 파병됐다고 해서 우리가 움직일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곤경에 처한 국내의 시선을 외부로 옮기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사실이라면 잘못된 선택이다. 전쟁은 되도록이면 일어나지 않는 게 좋고, 개입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 대외 정책이 구체화할 때까지 냉정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2기 트럼프 시대의 대비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평화가 곧 승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외교·안보 진용의 재정비와 대외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다. 한미일 중심에 초점을 둔 대외 정책으로는 다원주의 시대를 더는 견인할 수 없다.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모토는 주지하다시피 ‘미국 제일주의’다. 전통적인 동맹의 가치도 자국 이익 앞에서는 헌신짝이 될 신세다. 우리 역시 철저하게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미래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대일 외교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일본 정부는 무성의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우리를 욕보였다. 결과적으로 무기력한 대일 정책의 민낯이 다 드러난 것이다. 일본의 상응 조치만 기다리는 외교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모욕을 여러 번 경험했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논어〉 ‘계시’ 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그다음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야 배우는 사람이 또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그러한데) 이는 하급이다.’

지혜와 어리석음의 수준을 빗대는 말인데, 네 번째 유형이 시선을 붙잡는다. 곤경을 경험하고도 고치지 않으며 잘못을 자꾸 되풀이한다? 그건 자신이 항상 잘하고 있다는 오만 탓이 크다. 어리석음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누군가 가르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상상하면 실로 끔찍하다. 한 번의 오판으로 나라 전체를 누란의 위기로 몰아넣는 분야가 외교·안보다. 일찍이 겪었으면 느껴야 하고, 느꼈으면 바꿔야 한다. 숱한 시행착오에도 개선되지 않는 불안한 정책에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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