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위기의 대통령
논설실장
담화·회견, 의혹 해소 대신 불신 가중
2년 전 화물연대 파업 때도 대란 키워
대통령 지지율 취임 이후 최저 수준
국정 동력 얻기 어려워 후반기 위태
국민 예상 뛰어넘는 환골탈태 절실
겸손·정직·협치 통해 신뢰 회복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보기에 정말 불안하다. 위태위태하다. 이달 10일 반환점을 돈 임기 후반기가 매우 걱정스럽다. 우려가 커지는 건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에서 받은 실망감 때문이다. 담화와 회견은 명품백 수수 등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 그리고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 대통령 부부 간에 얽힌 온갖 논란으로 민심이 크게 나빠지자 긴급히 마련한 자리였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막연한 사과와 견강부회식 해명 탓에 국민 신뢰 회복은커녕 불신을 더 키웠다.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됐다.
윤 대통령은 위기 무마에 급급했는지 머리 숙여 사과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밝히지 않고, 명확한 쇄신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김 여사와 명 씨 의혹들에 대해 부정과 궤변으로 일관했다. 더욱이 김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 감싸고도는 모습은 국가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 ‘김 여사 두둔만 하다 끝난 140분 회견’이란 회의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전에도 윤 대통령의 태도는 위험해 보였다. 2022년 11월 화물연대 총파업 때다. 화물연대가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적정 최저 임금을 보장한 안전운임제 영구 시행과 적용 대상 확대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 초기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통해 곧바로 집행에 들어갔다.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2004년 제도 도입 이래 18년 만에 처음이었다. 이 조치는 되레 화물연대의 강한 반발과 16일간의 파업 장기화를 불러 경제와 민생에 막대한 타격을 안긴 물류대란을 가중시켰다. 앞서 파업 직후 정부는 화물연대와 교섭을 갖기로 약속한 상태였으나 대화와 설득 노력보다 업무개시명령을 먼저 발동하는 무리수를 둬서다. 당시 윤 대통령은 “불법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히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부르며 이들의 단체행동을 파업이 아닌 운송거부로 판단한 평소 정부의 입장과 어긋난다. 게다가 정부는 같은 해 6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에서 합의된 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와 추가 논의에 등한해 11월 파업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소통과 타협에 인색한 윤석열 정부의 과격성과 무능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이 같은 성향은 극심한 의정 갈등 사태를 낳았다. 정부는 올 2월부터 의과대학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마찰을 빚으며 9개월째 아무런 성과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필수·공공·지역 의료체계가 붕괴해 국민 목숨을 위협하고 환자들은 응급실 뺑뺑이로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뒷전에서 밀어붙이기식 의료개혁의 당위만 운운할 뿐 갈등 해소나 의료 정상화에 직접 나서지 않아 민심을 돌아서게 만든다. 협의의 전면에서 애쓸 줄 모르는 그에게 박한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불과 2년 6개월 새 바닥권으로 추락한 점으로 미뤄 국민 대다수가 같은 생각인 게 분명하다. 한국갤럽의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치인 17%로 나타났다. 반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는 74%로 최고치다. 지난 4·10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주원인으로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무능이 꼽혔다. 그동안 숱하게 대통령의 변화와 국정 쇄신을 요구받고도 달라진 게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보수층에서조차 불만이 쌓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늘고 있어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국정 운영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어려운 상태다. 일부에서 대통령 탄핵과 하야, 임기 단축 개헌 등 얘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라 더더욱 그렇다. 내년 1월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를 쥐락펴락할 2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파트너십과 협상에 힘이 실릴지도 의문이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위기다.
돌파구는 국민 예상을 뛰어넘는 환골탈태뿐이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의 뼈저린 반성과 겸허한 자세가 요구된다.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48.56%로 힘겹게 당선된 건 준비된 대통령이거나 난세의 영웅 같은 출중한 능력자여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의 변함없는 모양새에 격노한 국민의 차선책이었다. 오만과 내로남불에 익숙하고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전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진정으로 겸손하고 정직하게 소통하며 협치하려는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살뜰히 챙기고 나라를 살찌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전폭적인 국민 지지를 얻는 정권이 될 수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좋은 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뒤끝이 좋은 새로운 지도자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여기에 대통령이 최근 부산에서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말한 그 용기(?)를 쏟아부어야 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