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강 챙기는 게 다가 아니다"…이타행 실천하는 ‘맨발의 똑순이’ [맨발에 산다] ③
[경남 통영시 김나경 씨]
자녀 병간호에 심신 지친 딸 셋 엄마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 화두 매달려
맨발 경험담 듣고 "직접 확인해 보자"
효과 누리며 지역·이웃 돌아보게 돼
"몸+마음+음식 '3박자' 조화가 중요"
어느새 '통영 건강 매니저' 자리매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주부 이야기도 기사가 될까요?”
지난 8일 경남 통영시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나경(44) 씨가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전설의 UDT 베테랑(유병호)이나 큰 병을 딛고 일어선 전직 방송국 프로듀서(남승혜) 등 앞서 ‘맨발에 산다’ 시리즈로 소개된 이들과 비교해 볼 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딸만 셋을 둔 다둥이 엄마 나경 씨의 맨발걷기는 병간호로 시작됐다. 둘째 아이(15)가 일곱 살에 접어들 무렵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첫째(17)의 조직형이 들어맞아 서울 병원에서 골수이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의 병원 생활은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에게도 고역이었다.
사실 나경 씨를 힘들게 한 건 아이의 질병만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 전 조선소에 취직해 잦은 야근에 시달린 그는 어느 순간부터 다리 혈관이 부풀어 올라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혼 후엔 시아버지 가업을 잇는 과정이 힘들었는지, 대장에서 10개가 넘는 종양이 발견됐다. 십이지장 궤양은 ‘빵꾸 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나경 씨의 몸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아이 병이 혹시 자신 때문에 생긴 건 아닌가 싶은 괜한 자책감이 더해지며 일종의 화병으로 증폭된 것이었다. 그나마 듬직한 남편(49)이 곁에 있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한번 생긴 마음의 병은 쉽사리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경 씨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이라는 화두가 자리 잡았다.
당장 먹거리 변화부터 시도했다. 인스턴트나 인공 조미료에 길든 아이들이 먼저 속이 편해졌다는 긍정 신호를 보냈다. 내친김에 한·중·일·양식 조리사와 떡 제조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선 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운동도 꾸준히 했다. 헬스장에 다니고 틈틈이 걷기도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그런데 그 뿌듯함을 체감할 수 있는 확실한 ‘한 방’이 좀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맨발걷기와 운명적인 조우가 이뤄졌다.
말 그대로 우연한 만남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던 2022년 새해 아침. 맨발로 해맞이를 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처음엔 적잖이 놀랐다. 한겨울에 어떻게 맨발로 길을 나섰나 싶어 의아했던 나경 씨는 공부부터 시작했다. 인터넷 자료나 동영상을 보며 맨발 세계에 서서히 발을 들였다. 곧이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한번 해 보자’라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스스로 테스트해 보자는 결심이었다.
곧바로 맨발 유람을 시작했다. 동영상에서 본 다른 지역의 번듯한 황톳길을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첫발부터 디뎌 보자는 생각에 집 주변의 비포장 흙길을 걸었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시 전역으로 보폭을 넓혔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통영은 사실 인공이 덧씌워지지 않은 자연 길 천국이었다. ‘맨발 도시’가 될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셈이었다.
“맨발걷기가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거론되는 게 참 싫거든요.”
효과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경 씨는 자기 몸을 테스트해 본 결과를 얘기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맨발걷기 효능이 지나치게 미화되는 세태와 거리를 두고 싶다는 의사였다. 나경 씨는 “그래도 정말 몸이 좋아지니 계속하게 되더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피부를 뚫을 듯이 튀어나온 다리 혈관이 하나둘 정리되고, 몸 구석구석 통증이 서서히 물러가고, 만성 비염이 사라지고, 칙칙하던 입술 색깔이 붉게 돌아오더라고요.”
자가 테스트 결과에 만족한 나경 씨는 “이렇게 좋은 걸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개인 SNS에 맨발걷기 게시물을 올렸다. 2023년 1월이었다.
단체 대화방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도의회 의원 등 ‘힘 있는 사람들’도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이순신공원과 내죽도수변공원, RCE세자트라숲 등 통영시 곳곳에 맨발 보행로가 조성되고 세족장과 신발 보관함이 들어섰다.
“내가 맨발걷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뭐였지?”
나경 씨는 한 발 더 나가기로 했다. 단순히 맨발 길을 만들고 환경을 개선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에서다. 자신과 가족을 챙기는 것을 넘어 이웃과 지역이 함께 건강한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로 생각이 이어졌고, 맨발걷기(운동)와 건강한 식생활, 정신건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맨발걷기가 단순히 독특한 취미나 동호회 활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일상과 맞물려야 더 의미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실천력 갑’ 나경 씨답게 행동에 나섰다. 보건소와 협업해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학생 상대 시민단체 강연에 보조 강사로 나서고, 청년 행사나 학부모 모임에 적극 참가해 자기 생각을 나누는 데 힘을 쏟았다.
선한 사람의 영향으로 맨발 걷기를 시작했고, 맨발로 걸으면서 생활이 바뀌고 마음가짐이 달라진 경험을 지역 이웃과 함께할 때 의미가 크다는 깨달음을 실천하는 나경 씨. 이타행의 길을 걷는 그의 행보는 ‘평범한 주부’의 삶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