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리의 상식은 건강한가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배우고 쓰기 쉬운 한글은 정말 축복
많은 장점 불구 의심해 볼 점도 있어
현재 사용 중인 자모의 순서나 이름
세종의 <훈민정음>과 적잖은 차이
당시 ‘언문’ 명칭 사용도 지금과 상이
통용 중인 상식, 한 번쯤은 검증해야
한글은 참으로 축복과도 같은 문자다. 배우기도 쉽고 쓰기도 쉽다. 과학적인 원리도 숨어 있다. 창제자가 분명하다는 사실도 자랑거리 중 하나다. 물론 의문스러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글이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글의 표음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영어 표기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일에 붙는 ‘berry’와 ‘아주’라는 뜻을 가진 ‘very’는 한글로 모두 ‘베리’라고 표기되고, ‘디스’라고 했을 때도 남을 깎아내린다는 뜻인지 ‘이것’이라는 뜻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일본어의 경우도 같은 글자를 ‘카’나 ‘까’로 초성에 올 때는 모두 ‘가’로 표기한다. 중국어의 경우도 권설음처럼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소리가 있다. 한글이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훈민정음〉 서문에서는 분명히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 자모의 순서가 세종대왕이 편찬하신 〈훈민정음〉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훈민정음〉에서는 자음을 ㄱ, ㄲ, ㅋ, ㆁ, ㄷ·ㄸ, ㅌ, ㄴ 등의 순서로 배열하였고 모음은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로 배열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배열 순서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훈민정음〉에서 하늘을 뜻하는 아래 아(·)는 다른 모음을 만드는 기본 글자이고 땅(ㅡ)과 사람(ㅣ)에 붙여 ㅗ나 ㅏ 등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글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 한글과 〈훈민정음〉의 배열 순서는 이렇게 전혀 다른가.
한편 한글의 자음에는 기역, 니은, 디귿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왜 기윽, 디읃, 시읏이 아니고 기역, 디귿, 시옷일까. 더군다나 이 이름은 〈훈민정음〉과 다르다. 〈훈민정음〉 언해본을 보면 ‘ㄱ난’이라고 되어 있고, 이름이 ‘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한글 자모의 이름은 〈훈몽자회〉라는 책의 범례에 붙어 있는 ‘언문 자모’라는 자료에서 한자로 기역(其役), 디귿(池末), 시옷(時衣)이라고 나타낸 것을 따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런 문제의 발단은 〈세종실록〉에 기록된 사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서는 세종께서 언문을 친제하셨고, 언문으로 한자와 우리말을 모두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말미에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1443년). ‘훈민정음’은 그로부터 3년 뒤에 완성되었다(1446년). 우리가 알고 있는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 물 흐르듯이 통할 수 없다”는 서문은 〈훈민정음〉의 서문이다. 그 사이에 최만리가 언문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1444년). 그런데 우리의 상식은 다르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는데, 사대주의에 골몰한 양반 사대부들이 이를 폄하하여 언문이라고 불렀다고 여기고 있다.
언문이라는 말은 우리글이 생긴 이래로 계속 사용되어 왔고, 심지어 세종 자신도 최만리가 상소한 내용에 대해서 나무랄 때 자신이 창제한 글을 언문이라고 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다. 언문은 우리말을 나타내는 글이라는 뜻이 들어있지만, 훈민정음은 ‘바른 소리’라는 뜻인데 무엇이 바른 소리라는 것인가.
거기다가 ‘훈민(訓民)’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지금까지 없던 우리글을 만들어 백성에 가르치고자 하였다면 당연히 ‘교민(敎民)’이라고 해야 한다. 훈육(訓育)과 교육(敎育)이 다른 말인 것처럼 훈민정음의 함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훈’은 이미 배웠는데 잘하지 못하거나, 잘할 때까지 반복훈련을 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한편 교민은 성군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왜 세종대왕은 ‘교민’이라는 유교적인 덕목을 버리고 굳이 훈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나아가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60쪽에 이르는 순전한 한문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백성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방대한 책을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은 한자를 아는 양반들이 배워서 백성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최만리의 반대 상소는 최만리 혼자서 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한자 식자층의 한결같은 심정임이 분명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명한 책이지만, 그 책을 직접 읽어보거나 펼쳐 본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직접 해례본을 펼쳐 들고 읽어보려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식이 굳건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통용되는 상식은 늘 검증되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상식이 오래 통용되면 그 사회는 결국 편견에 빠지게 될 것이고 건강함을 유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