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4살짜리가 고교 책을?
대한민국에서 문맹률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오래전에 그 수치가 ‘0’에 가깝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형편에 당황스럽게도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문해력은 한창 배우는 시기인 학생들에게서 특히 더 낮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달 7일 한국교총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교사들 중 열에 아홉 이상이 학생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문맹률과 문해력 사이 이 괴리를 어찌해야 하나.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나온다. 그중 스마트폰 등을 통해 무차별 쏟아지는 영상 정보 탓에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진단은 꽤 유력하다. 덴마크 등 디지털 교육을 선도하던 유럽 국가들이 올해 들어 잇따라 ‘아날로그 교육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게 그 증거다. 우리나라도 국회에서 ‘교내 스마트폰 금지 법안’이 추진 중이며,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최근 있었다.
그런데 가장 ‘한국적’인 풍토에서 나오는 진단이 있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문해력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문해력에 특별한 교육이 따로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런 진단은 대학입시 문제와 직결되고, 그렇다면 조기 교육이 유일한 처방이 된다. 그래서 ‘한국적’이다. 국내 대표적 학원가인 서울 대치동에는 수년 전부터 문해력 학원이 줄을 잇고, 거기에 아이를 넣으려는 부모들의 열정이 데일 정도로 뜨겁다.
근래에는 정도가 더욱 심해져, 무려 4~6살 아이를 학원에 못 넣어 안달이라고 한다. 수강을 신청하면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대기에만 수년이 걸려 “문해력 학원에 보내려면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수강 신청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어렵사리 학원에 들어가면 유아기에 고교 과정 책을 읽고 초등학생이 되면 수능 국어 문제를 풀어야 한단다. 4살짜리 아이에게 고교 과정 책이라니! 비싼 학원비는 둘째 치고, 이런 ‘벼락치기’가 아이들의 문해력 증진에 효과가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대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뿐인가. 돈 없어 그런 교육을 못 시키는 서민들, 돈 있어도 멀어서 못 보내는 지방 사람들은 어찌하라는 것인가. 내 아이에게 죄인이 되어야 하나…. 혼란스럽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