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법 위의 존재’ 만든 이 누구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검찰, 김 여사 의혹 잇단 불기소
제대로 된 수사 없이 무혐의 결론
‘법 앞의 평등’ 헌법 규정 무색
법 집행 공정성, 건강한 사회 지표
체계 무너질 땐 국가 운영도 흔들
“검찰 개혁” 비등, 자성의 계기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치’ 개념의 정수를 담은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이 요즘처럼 허망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왜 그런가. 법 위에 군림하는 특수 계층이 있고, 권력 앞에서 순한 양이 되고 마는 사정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지난 17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증권 계좌가 주가 조작에 동원된 건 사실이지만 김 여사가 시세조종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게 결론이다. 쉽게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사건을 4년 반 동안 방치하다 갑자기 불기소 결론을 내린 검찰의 행태는 온통 비상식적이다. 2020년 4월 사건이 고발된 뒤부터 2021년 윤석열 검찰총장 퇴임 때까지도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대선 국면에서도, 정권 교체 뒤에도 다르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팀의 잦은 교체, 김 여사 출장 조사 같은 납득하기 힘든 조치로 눈총을 샀다. 그러다 지난 10·16 재보선 뒤 무혐의로 사건을 전격 종결한 것이다. 무슨 잘 짜인 각본을 보는 듯하다.

이번 사건에 김 여사가 연루됐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여럿이다. 김 여사와 주가 조작 주범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은 20년 이상 이해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다.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유죄 선고를 받았다. 김 여사가 주가 조작 관련자와 주고받은 수십 차례의 전화·문자 메시지, 김 여사를 공범으로 인식하는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도 많다. 검찰은 이를 모두 외면했다.

검찰이 내세운 근거는 ‘증거 불충분’. 증거가 정말로 없는 걸까, 아니면 증거를 찾을 의지가 없는 걸까. 앞서 조사 과정 자체를 보면 후자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아니, 숫제 김 여사 변호인이라 해도 부정하기 힘들 정도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거짓말까지 하다가 들통난 게 대표적이다. 검찰은 김 여사 휴대전화 등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고 법원 탓을 했다. 알고 보니 영장 청구 자체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결국 검찰의 수사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사건은 압수수색 한번 없이 의혹투성이인 채로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보름여 전 검찰은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도 무혐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김 여사에게 선물을 준 최재영 씨를 기소하라는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는 무시됐다. 2018년 수심위 도입 이후 기소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첫 사례가 김 여사 면죄부를 위해 만들어졌다.

법 집행의 공정성은 건강한 사회의 지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법망을 빠져나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국가 운영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법체계, 행정 체계가 무너지면 개인 간의 신뢰도 무너진다. 아무런 기준이 없는 나라에서는 각자도생만이 판을 치게 될 터이니, 곧 역사의 퇴행이다.

검찰 역사의 수치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출한 무혐의 결론은 거대한 파장을 낳고 있다. 김 여사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의 경우 고발인들이 무혐의에 불복해 항고할 예정이고, 이와 별도로 시민단체가 불기소를 결정한 검찰 수사 지휘부를 공수처에 고발한 상태다.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도 고발인들의 항고장이 제출됐다. 두 사건 모두 검찰 불기소 후 항고 절차와 공수처 재수사를 밟게 된다.

정권의 인사에 좌우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조직이 검찰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법 앞에서 엄정해야 하는 것이 검찰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를 저버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정권의 신뢰를 잃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한테 찍히는 것이다. 검찰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요즘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이 ‘해체 수준의 검찰 개혁’이다. 국민들은 절감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이 개혁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시인 김지하가 현대사의 ‘오적(五賊)’을 신랄하게 발가벗겨 당대의 부패와 거짓을 조롱한 때가 1970년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법 위에 군림한다는 것. 오적의 활개는 사정기관의 용인 혹은 부역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권력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검찰, 공익의 대변자이기를 포기한 검찰이 그때와 다르다 할 수 있나.

김 여사가 연루된 ‘명태균 사태’, 더 큰 태풍이 정국을 휘감는 요즘이다. 공천 개입 의혹 등 검찰이 당장 수사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국민들이 다시 묻는다. 그리고 검찰 역시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김 여사는 ‘법 위의 존재’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