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동천 살리기' 백년하청 안 되려면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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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파리 센강 주목받으며 관심 높아져
수원지 물 투입 방안 ‘땜질식’ 불과
지류까지 포함해 하천 전부 손대야

지렛대 역할 할 기업 참여 열어 놓고
도시재생 연계한 큰 그림도 그려야
수질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한낱 꿈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2020년 10월 사망한 후, 이듬해 4월 유족 측은 이 회장이 평생 수집해 온 미술품과 문화재 2만 30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부산이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부산 유치를 위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수원, 세종, 광주, 대구, 창원 등 여러 도시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이 회장 소장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되면서 부산 유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부산시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부산시는 해묵은 과제를 하나 들고나왔다. 그건 바로 동천 수질 개선 사업이다. 동천 살리기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센강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부산 시민들의 관심이 더 높아진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부산시는 동천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하루 평균 7000t의 성지곡수원지 계곡물을 투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몇 년 전 준설 작업처럼 동천을 살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동천의 수질 개선은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으나 최근 10년간 진행된 해수 투입 대책마저 수백억 원의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업 역시 부분적인 정화에 그쳐, 동천 살리기는 자칫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천을 살리려면 부전천 등 대여섯 개의 동천 지류까지 전부를 손대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생활오수의 하천 유입을 막는 분류식 하수관거 정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게 선행되지 않고서는 동천이 맑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또 퇴적토 제거부터 철저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땜질식 정비로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다. 강 밑바닥까지 깨끗하게 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민, 민간단체는 물론이고, 기업의 참여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울산 태화강 생태 회복에도 이들의 참여가 큰 힘이 됐다.

그래서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해 본다. 바로 특정 기업을 지렛대 삼아 부산 동천을 살리자는 것이다. 서두에서 삼성그룹을 언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산은 삼성과는 오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동천 옆 서면 더샵 센트럴스타 자리는 오늘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제일제당이 있었던 곳이다. 동천과 삼성은 그만큼 인연이 깊단 얘기다. 기업의 재정적 참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꼭 이런 도움이 아니어도 괜찮다. 기업이 할 일은 많다. 이에 상응해 동천에 특정 기업과 관련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설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참여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성사된다면 그 혜택은 오롯이 시민에게 돌아온다. 특정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유치는 지역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관광객 유입의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이 아니면 어떤가. 동천 주변에는 LG그룹의 시초인 락희화학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의 터전이 있었다.

이쯤 되면 일각에선 동천 살리기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동천은 부산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도심 한복판으로 냄새나는 탁한 물이 흐르는 것을 방치한 채 부산의 내일을 얘기할 순 없다.

동천은 근대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릴 필요도 있다. 복개된 구간을 걷어내고 프랑스 센강이나 싱가포르의 싱가포르강처럼 배를 활용해 부산의 역사와 흔적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뱃길 구간은 동구 미군 55보급창 인근에서 부산진구 광무교까지라도 괜찮다. 도시재생과 연계한 동천 개발은 싱가포르강 인근 클락키(Clarke Quay) 지역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곳은 세계적인 수변 관광지로 싱가포르의 역사 흔적을 보여주는 옛 건물과 현대적인 상업 시설이 강을 따라 펼쳐져 있어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1977년부터 10년여에 걸쳐 개발한 결과다. 동천 또한 도시재생과 연계해 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운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지금이라도 행정, 시민, 환경단체, 도시 디자이너 등이 적극 나서서 동천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동천의 수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낱 꿈에 불과하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부산시와 시장의 실행 의지가 필수적이다. 비록 힘들지라도 동천의 꿈이 꼭 실현되길 기대해 본다. 동천이 살아야 부산이 산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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