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항공물류 전성시대, 가덕신공항 미래는
복합 항공화물로 승부… 화물터미널·물류기지 확대 시급
해외배송·반도체 항공물류 견인
수에즈운하 침체, 하늘길 활성화
인천공항, 화물 90% 이상 독점
부산권, 울며 겨자 먹기 인천행
신선도 하락, 경비 등 피해 막심
국내외 항공사 화물전용기 도입
머스크 등 항공물류사로 탈바꿈
복합물류 고급 인력 양성하고
글로벌 특송사 등 대거 유치해야
■ 전 세계 항공화물 배송 시장 급신장
“부산에서 살아 있는 방어를 썰어서, 다음 날 미국 전역으로 직배송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LA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온라인 프리미엄 식품점 ‘뜻밖의한끼USA’. 인스타그램(@unexpectedmeal.la)을 통해서 한국의 고품질 수산물을 미국 한인 교포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뜻밖의한끼USA는 참치와 가자미, 방어 등 수산물을 부산에서 손질해 급랭한 뒤 항공편으로 미국 LA로 수입 통관한 뒤 미국 전역에 콜드 체인(Cold Chain)을 통해 유통한다. 최근에는 갑오징어와 명란까지 신선식품 상품군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일본 등 해외 21개국에서 사용되는 해외 생활자 대상 구매 대행 플랫폼인 브링코(bringko). 21개국에 거주하는 20여 만 명 회원을 대상으로 브링코 앱과 인스타그램(@bringko_official)을 통해서 쿠팡, 네이버 등 국내 170여 개 온라인쇼핑몰 상품을 한꺼번에 통합결제·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 쇼핑몰에서 구매한 제품은 FedEx, EMS, GEM, UPS, Pantos 등 다양한 제휴 특송사를 통해서 곧바로 항공으로 배송한다. 쇼핑에서 국내와 해외의 구분이 사라진 셈이다.
역직구 플랫폼 브링코는 연간 매출 200억 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의류, 뷰티상품에서 최근에는 김치, 반찬류 등 신선식품으로 상품군을 대폭 확대했다. 항공물류 덕분이다. 올해는 김치 주문과 동시에 강원도에서 담은 김치를 그날 오후에 픽업해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등 21개국으로 배송하고 있다. 강원도에서 미국, 호주 등 소비자 집까지 항공물류 시스템을 통해 직배송한다. 김치가 소비자 집에 도착할 때는 먹기 좋은 상태로 익도록 배송 시간과 발효 온도까지 조절한다. 최근에는 꼬막, 마늘장아찌, 깻잎김치, 궁채나물, 고추장아찌, 섞박지 등 반찬류도 국내에서 주문 당일 만들어 비행기로 수출한다. 비행기를 이용한 신속한 배송이 기본이다.
제임스 최 브링코 부사장은 “전자상거래는 항공이 아니면 경쟁력이 없다”라고 단언한다. 최 부사장은 “해외 한국식품 소비자는 새로운 것, 한국에서 방금 만든 신선한 것을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필요한 것을 빨리 받겠다는 소비자 니즈를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항공으로 배송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경남의 딸기, 경북 복숭아 등 신선 농산물의 항공 수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항공물류의 전성시대다.
■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항공화물 급증
여름철은 항공화물 비수기로 꼽히지만 국내 해외 역직구의 호조, 백신과 신선식품,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 등 글로벌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항공물류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게다가 해운업이 중동전쟁 위기와 수에즈-홍해 항로 침체로 인한 바닷길 병목 탓에 남아프리카 희망봉 항로로 우회하면서, 화주들이 하늘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제품의 예민한 특성 탓에 항공기로만 운송하는 국내 반도체 수출이 되살아난 것도 원인이다. 지난 5월 인천공항 화물 물동량이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고, 세계 항공화물 시장은 지속적인 항공화물 수요 증가로 인해 전년 대비 13.2% 증가했다.
대한항공은 물론이고,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들도 화물 전용기를 도입하고, 밸리 카고(Valley Cargo) 화물량을 늘리는 등 역량을 키우면서 항공화물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이다. 밸리 카고는 여객기의 수하물 공간을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는 것으로, 화물기보다 공간이 작지만 상당한 양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또한 주로 밤에 뜨는 화물기보다 업무시간인 낮에 도착지에 내려줄 수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편이다.
■ 부산권, 항공물류 기반 부재로 피해 심각
급증하는 항공화물의 90% 이상이 인천국제공항에 집중돼 있다. 2023년 말 우리나라 전체 항공화물 물동량 395만 톤 중 인천공항에서 약 360만 톤(90.1%)을 처리했다. 특히 수하물과 우편물을 제외한 순수 항공화물은 인천공항 독무대이다. 김해국제공항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인천공항은 공항과 항공물류단지 인프라, 다양하고 빈번한 장거리 항공 노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김해국제공항 인근 부산과 경남에서 수출 하는 딸기 등 농수산물을 비롯해 각종 화물 항공 90% 이상이 김해공항의 장거리 노선과 대형 밸리카고 부족으로 인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2년 인천공항을 통한 경남 항공화물 수출은 6만 3567톤에 이르고 있다. 농수산물을 수출하는 농어민들은 비용 상승과 상품 신선도 하락을 감내하면서도 거리가 가장 먼 인천공항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부산 본사의 포워딩 전문 회사인 트래닉스(주) 이준석 대표는 “김해공항은 제한적 근거리 노선이 집중되고, 장거리 국제노선이 없어 유럽, 미국, 중동, 남미 등 다양한 화물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면서 “부산권 화주들은 추가 물류비를 지불하고 인천공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FedEx, DHL 등 글로벌 항공화물 특송업체 한국지사도 서울과 인천에 집중돼 있다.
■ 글로벌 해운사들 항공물류 사업 적극 진출
글로벌 해운 리더인 머스크(Maersk)는 더 이상 해운회사라고 표방하지 않는다. 2018년 ‘앞서간다(Stay Ahead)’ 전략 발표 이후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물류기업으로 기업 성격을 바꾸고 있다. 해운회사에서 이제는 항공과 포워딩, 철도, 육상 운송을 장악해 종합물류시스템을 제공하려는 목적이다. 머스크 측은 “우리의 경쟁사는 아마존 혹은 대한민국 택배회사가 될 수도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화물전용 항공사 머스크 에어카고(Aircargo)를 운영하고 있는 머스크는 2022년 항공물류에 강점을 보유한 독일계 세나토 인터내셔널(Senator International)을 인수했다.
머스크에 자극을 받은 경쟁 해운사 CMA CGM도 최근 항공화물사업부를 운영하며 2026년까지 항공기 12대를 추가할 계획이다. 대만 선사 에버그린(Evergreen)은 대만 국적 항공사인 에바항공(EVA Air)과 사업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화물항공 브랜드인 에바항공 카고(EVA Air Cargo)를 통해 물류업을 강화했다.
신석현 동명대 항만물류시스템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해운회사에서 항공 등 종합물류회사로 변신하는 등 세계적으로 물류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가덕신공항 개항을 앞두고 부산도 항공물류의 확대와 종합물류회사·국제 특송회사 유치, 인력 양성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 가덕신공항 화물 처리 용량 대폭 키워야
‘동북아 물류 중심’을 목표로 하는 가덕신공항의 항공화물 처리 능력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됐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항공 수요를 2065년 기준 화물 33만 5000톤으로 잡았다. 인천공항 처리능력의 5%에 불과한 수준이다. 인천공항은 5단계 확장 사업으로 연간 1000만톤까지 화물 처리 능력을 높일 계획이다.
김가야 동의대 명예교수(한국기술사회 기술정책고문)는 “가덕신공항을 글로벌 복합물류 중심 공항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화물터미널 처리 용량과 배후물류단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본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속철도와 부산신항 등 육해공 물류망을 기반으로 동남권 전체가 신공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스크 출신인 신 교수는 “특송물류, 국경 간 전자상거래 Sea&Air 복합운송, 콜드체인 물류 등에 특화하여 항공물류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가덕신공항을 국가 간 전자상거래 허브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개항에 앞서 유엔조달 물류창고 유치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