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낭만 부럽지 않은 ‘분위기 깡패’ 포장마차촌 [별별부산] ⑤
[영도 포차거리]
물양장 주차장 자리, 밤엔 낭만포차 변신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사이 포구에 자리
정면으론 우뚝 솟은 부산타워 경관조명
비릿함 품은 항구 낭만에 안주 가격 무난
SNS 타고 국내외 애주가들 발길 이어져
주말엔 야외테이블 차지 위한 경쟁 치열
여름이다. 지금 한창인 장마가 물러가면, 이 계절은 낭만파 애주가들에겐 밤바다에서의 한잔이 절로 생각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럴 때 ‘바로 거기지’라고 떠오르는 곳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전남 여수시에서의 경험이 강렬하다. 그중에서도 10여 년 전 창 너머로 돌산대교가 보이는 여수시의 한 횟집 2층에서 술잔을 기울인 기억이 우선 떠오른다. 당시 신문 기사에 제목을 달던 편집부 소속이었는데, 맛난 횟감과 운치에 더해 식당 벽에 붙은 지역 소주 업체의 ‘잎새주세요’라는 멋진 광고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낭만과 운치를 얘기하자면, 여수시 거북선대교 아래의 포차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마저 ‘낭만 포차거리’가 아닌가. ‘여수 밤바다~’로 시작하는 장범준의 달콤한 감성 발라드곡이 밤새 울려 퍼지는 일대는 특히 외지 관광객의 ‘원픽 방문지’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부산이라고 이런 낭만과 추억을 선사할 장소가 없을 리 있나. <부산일보> 인기 연재물 ‘별별부산’이 수소문해 봤다.
가장 먼저 후보에 오른 곳은 해운대 포장마차촌이다. 해운대해수욕장 해변 바로 뒤 주차장 쪽에 나란히 줄지어 선 이곳은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장소였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인들이 많이 찾아 유명해지기도 했다. 특히 고급 재료인 랍스터를 맛볼 수 있는 포차로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은 해운대구청과의 약속에 따라 지난달 철거돼 지금은 명성만 떠돌고 있다.
해운대 포장마차촌이 사라졌다고 부산의 밤바다 낭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개구이를 대표 메뉴로 애주가들을 불러 모으는 서구 송도 암남공원과 해운대구 청사포 일대를 비롯해 사하구 다대포 몰운대 입구, 기장군 학리 방파제 등 밤바다를 향해 술잔을 들 수 있는 곳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하고 힙한 장소로 정평이 난 곳은 따로 있으니, 바로 영도구 봉래동 봉래물양장 공영주차장에 자리 잡은 영도 포차거리이다. 이곳에서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상호를 단 포차 23곳이 영업 중이다. 1980년대부터 뱃사람들의 시장기와 애환을 달래 주던 포차가 하나둘 들어서며 생긴 영도 포차거리는 코로나 팬데믹 시절 실내 영업 제한 ‘무풍지대’로 주목을 받으며 점차 다리 바깥 뭍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도 포차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도시철도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입지다. 영도 포차거리는 일제 수탈기와 한국전쟁 피란기 애환이 가득 서린 영도대교(영도다리라고 흔히 불린다)에 접해 있다. 1호선 남포역 8번 출구에서 60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여서 영도대교를 건너 10분 안에 닿을 수 있다. 이런 입지는 운전 부담 없이 한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두 번째는 속칭 ‘분위기 깡패’로 불릴 만한 주변 풍경이다. 애인이든 친구든 마음 통하는 이와 함께한다면 어디라도 좋겠지만, 이왕 부산에서 포차를 이용한다면 바다를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앞서 언급했듯이 포차에 앉아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은 부산에서도 여럿이다. 하지만 ‘ㄷ자’ 형태의 봉래물양장을 둘러싸고 자리한 이곳에선 해수욕장과는 또 다른 항구의 비릿함을 품은 ‘찐 부산 분위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건배’하고 술잔을 들어 올리면 눈앞에 금방이라도 뱃고동을 울릴 것 같은 선박(주로 예인선)들이 도열해 있는 풍경 말이다.
포차 뒤쪽은 물양장을 마주 보고 솟은 고층 호텔 두 곳이 병풍을 치고 있다. 여기에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롯데백화점 광복점, 부산타워(용두산공원) 등 부산 원도심이 선사하는 주변 건축물들. 포차에 앉아 이들이 발산하는 경관조명을 보노라면 관광대국 싱가포르의 수변 명소 클라크키 노천카페에 자리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도 포차거리는 오후 4시께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인근에 마련된 수레 보관소에서 포차가 하나씩 이동해 차량이 떠난 공영주차장 자리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손님을 받는 시간은 포차 도착시간과 상관없이 일제히 오후 6시 무렵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메뉴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곰장어·오돌뼈·고갈비 등 구이류부터 산낙지·문어숙회 등 해산물, 어묵탕·조개탕 등 탕류까지 대동소이하다. 가격은 대부분 2만 원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 특이한 점은 LA갈비(2만 5000원)가 메뉴판에서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차마다 2개씩 내놓는 야외 원탁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특히 주말엔 이른 시간부터 주변을 서성이며 테이블이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조출족’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야외 테이블 이용 시간을 2시간으로 제한하고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매달 1·3주 월요일은 공식 휴무다. 태풍이 몰아닥치는 등 날씨가 심하게 궂은 날에도 쉰다.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던 상인 연령층에도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이후 30대 젊은 사장이 하나둘 합류하면서다. 젊은 손님이 좋아할 만한 새 메뉴 선정이나 SNS 계정 운영 등 최근의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상인회 윤종덕 회장은 “SNS를 통해 포차거리가 널리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인의 발길도 늘었다”고 소개했다. 윤 회장은 이어 “상인들 역시 영도 포차거리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상품 중 하나라는 마음가짐으로 손님을 맞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