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드라마인가 크리처물인가…‘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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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면 죽는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홍보 문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청각이 극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들을 피해 숨죽인 채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는 크리처물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팬들이 열광할 만한 작품이 지난 26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이하 ‘첫째 날’)은 괴수들이 지구를 덮쳤던 그날,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있었던 일을 그리는 속편입니다. 사운드가 핵심인 이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봐야 제격입니다. 과연 속편이 본편보다 못하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요? 직접 관람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첫째 날’은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의 이전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입니다. 주인공이 기존과 달라진 파생작이라는 점에서 스핀오프이기도 합니다. 감독도 달라졌습니다. 1편과 2편은 존 크래신스키 감독이 연출했지만, 이번 작품은 ‘피그’(2022)로 호평을 받았던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다만 크래신스키가 사노스키와 함께 각본을 썼고,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영화는 기존 작품을 보지 않았던 관객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게끔 제작됐습니다. 주인공은 젊은 여성이자 암 환자인 샘(루피타 뇽오)입니다. 그가 병원을 벗어나 오랜만에 시내로 나간 그날, 괴수들이 뉴욕을 덮쳐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휴머니즘 가미한 크리처물의 색다른 매력

혼비백산한 시민들이 괴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초반 장면은 크리처물의 장르적 재미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엄청난 속도와 무시무시한 힘, 예민한 청각까지 갖춘 괴물들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이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입니다. 이번 속편에서도 이런 설정을 활용한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이 숨통을 조이는 몰입감을 안깁니다. 괴물이 주인공 코앞에서 서성이는 순간, 등장인물은 물론 극장에 모인 관객들까지 숨을 참게 됩니다. 관객을 갑작스럽게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기법도 적절히 활용해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영화는 크리처물이지만 오락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기존 시리즈 주인공들이 철저히 생존을 위해 행동했다면, 이번 작품 주인공은 좀 더 의연하게 행동합니다. 사노스키 감독이 ‘피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드라마 요소가 가미되면서 영화는 휴머니즘 성격을 갖춘 크리처물이라는 특이한 장르로 변모했습니다.

활기가 넘치던 뉴욕에서 샘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비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종말이 다가오자 샘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대피하는 대신 사소해 보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괴물이 득시글거리는 뉴욕 시내를 가로지르는 위험천만한 여정을 택합니다. 이 선택은 언뜻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은데다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는 점이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이 비상식적인 여정에 우연히 동행하게 된 남자 에릭(조셉 퀸)은 샘에게 큰 힘이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인간성을 잃지 않습니다. 마음이 여린데 공황장애까지 있는 에릭은 샘의 도움으로 몇 차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에릭 역시 통증에 시달리는 샘을 위해 진통제를 구하러 나서는 등 힘이 되어 줍니다. 고요해진 뉴욕에 홀로 남게 된 샘이 의연한 선택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공포 영화 ‘어스’(2019)로 얼굴을 알린 배우 루피타 뇽오의 실감나는 표정 연기가 몰입을 돕습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기대 너무 컸나…“전작보다 못하다” 혹평도

영화는 괴수 외에도 관람 포인트가 많습니다. 샘의 반려동물인 고양이는 긴장을 완화시키기도 하고 심화시키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또 2편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배우 자이먼 운수가 단역으로 출연해 세계관을 이어줍니다.

좀비 영화 ‘28일 후’가 황량한 영국 런던 시내의 모습을 담아 이질감을 자아낸 것처럼, 조용해진 뉴욕 시내를 그린 ‘첫째 날’ 속 장면들도 아포칼립스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합니다. 강판이 찢겨나간 험비(군용 다목적 차량), 생채기가 가득 난 건물 외벽 등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미장센도 눈길을 끕니다.

기자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관람했는데, 실관람객 사이에서는 평가가 다소 갈리는 양상입니다. 개봉 첫째 날인 26일 오후 4시 현재 ‘첫째 날’의 CGV 골든에그 지수는 74%로 저조한 편입니다. 실망했다는 관객들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기존 시리즈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이야기 전개가 기대와는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요소가 더해지다 보니 긴장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습격 첫째 날 뉴욕 곳곳이 초토화되고 이에 군경이 대처하는 것과 같은 스펙터클한 액션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플롯에 실망할 수 있겠습니다. 예고편만 봤을 때는 좀비가 전 세계에 창궐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월드워Z’(2013)와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 스토리는 영 딴판이니 혹평이 나올 만도 합니다. 역시 ‘본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영화계 속설을 뛰어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참, 쿠키 영상은 없으니 참고하시고요.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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