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옷매무새 가다듬고, 꼭 투표합시다
대한민국 4년, 더 큰 미래 선택의 시간
헌법에 보장된 주권자 권리 행사의 날
한국 ‘분열·갈등’ 정치 유독 심해져
‘공포팔이’ ‘감정팔이’ 선거만 횡행
유권자·지역 대표 능력 제대로 판단해
단정하고 실력 있는 후보 투표하기를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양쪽에서 차가 달려오는 길 한복판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길 한복판’에서 ‘각자가 가는 방향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클랙슨 소리와 고함, 삿대질에 갇혀 옴짝달싹 못 했다. 예비후보 등록부터 공천 난장, 선거로 이어졌던 정당과 후보들의 4·10 총선 질주도 종착역에 도착했다. 유권자들은 이제는 한쪽을 선택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철학자가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명언까지 남겼을까. 대의민주주의 꽃인 선거가 바로 선택이다. 자신을 대표할 누군가를 고르는 일이다.
정치가 진영으로 나뉜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여야 어느 정당이고 정치적 존재감과 실행력은 찾기 어려웠다. 대신 ‘상대방이 당선되면 국가가 무너진다’라는 불안감을 부추기는 공포 마케팅만 횡행했다. 미국의 정치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저서 〈감성의 정치학〉에서 “성공적인 선거운동은 유권자의 이익과 가치관 속에 숨은 감정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여야는 공약, 비전, 이념 등 대형 쟁점은 온데간데없고,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불쏘시개 삼기 위해 ‘정권 심판론’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걸었다. 유권자의 감정을 흔들기 위해 ‘대파’ ‘삼겹살’ ‘일하는 척했네’ ‘눈물 쇼’ 등 감정 이슈만 흔들었다. 실력보다 상대방의 실패와 반사이익만 노리는 저질 정치다. 지지자의 분노를 자극하고,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최대한 확대하는 분열의 정치였다. ‘적’이 있어야 내가 살 수 있고, ‘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정당성 근거로 삼는, ‘적’이 없으면 ‘악의 진영’이란 프레임을 만드는 정치였다. 마치 고대 사회에서 적대적 부족에 속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돌을 던지는 부족주의를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10일이 불쑥 찾아왔다. 총선 날이다. 벚꽃 비가 부산의 바닷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정치공학적으로는 2030 세대, 60대 이상의 투표율이 중요한 변수라고 한다. 하지만, 선거를 장사치 선거꾼들의 셈법에 맡겨둘 수는 없다. 선거는 축제이자 투쟁의 장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조간신문이 현관 앞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자마자, 이불을 걷어차고 투표소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기권도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투표하지 않는 유권자에게는 정치인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거나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혹시나 ‘고만고만하거나 비도덕적인 후보’ 일색이라는 이유로 투표를 포기한다면 ‘분열의 정치꾼’들에게 헌법에 보장된 주권을 그저 내어주는 꼴이 된다. 영문도 모르고 절만 하는 셈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다. 주권을 행사해야 주권자가 된다.
누군가는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투표의 가성비를 이야기한다. 선거에 투입된 비용은 선결제다. 21대 총선처럼 유권자의 34%가 기권하면 버리는 세금만 1496억 원이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가성비를 따질 수조차 없다. 게다가 마음에 들지도 않는 머슴이 4년 내내 주인행세를 하는 꼴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도무지 내키는 후보’가 없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누구를 꼭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투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표장에 나서기 전에 현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도 가다듬자. 그래도 공식적인 국가 행사이다. 깔끔한 차림과 함께 오늘 찍을 후보자들의 매무새도 찬찬히 살펴보자. ‘소속 정당’ ‘정책·공약’ ‘능력·경력’ ‘도덕성’ 등 나만의 거울로 후보들을 하나하나 평가해야 한다. 지역의 대표를 뽑는 총선인 만큼 지역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후보인지, 막말과 투기, 범죄 전과 등 헝클어진 이력은 없는지도 따져야 한다.
22대 국회의 역할은 정말로 막중하다. 저출산·인구 감소로 지방과 국가소멸이란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고 있다. 고령화사회, AI 개발 경쟁, 세계적인 전쟁 위기 등 숙제가 가득하다. 부산은 경제 침체와 수도권 집중으로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조차 뺏길 위기이다. 어느 정당과 후보가 주권자의 요구를 제대로 수행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유권자의 책임이다. 나쁜 정치인은 투표하지 않는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다고 한다. 투표하지 않고서는 나쁜 정치를 탓하거나, 피해자라고 호소할 자격조차 없다. 누가 더 절박하게 오늘 투표장으로 향하는지에 따라 대한민국 운명이 결정된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단정하고 실력있는 후보들이 많이 당선되길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