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이번에도 바뀐 것 없이 잊히고 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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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2018년 3월 6일 오후 2시 10분께 통영시 욕지면 좌사리도 남서방 2.5해리 해상에서 쌍끌이중형저인망어선 제11제일호가 뒤집혀 선원 11명 중 4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당시 사고는 기상 악화에도 불법 조업을 위해 무리하게 운항하다 선체 복원력이 떨어진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꼬박 6년이 지나 바로 인근 해역에서 유사한 사고가 또 발생했다. 지난달 14일 오전 4시 20분께 욕지도 남방 4.6해리 해상에서 쌍끌이대형저인망 제102해진호 전복돼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엔 포획한 물고기 상당량을 어창이 아닌 어선 한 귀퉁이에 쌓아두면서 무게 중심이 쏠려 선박이 복원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반복되는 참사에도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어획량이 줄면서 어선 사고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민 의식과 제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궂은 날씨에도 바다로 나간다. 현행 어선안전조업법에 따라 태풍주의보‧태풍경보‧풍랑경보 땐 모든 어선이 출항할 수 없다. 풍랑주의보 발효 시엔 30t 미만 어선만 출항이 금지된다. 그러나 15t 이상 어선이 2척 이상 선단을 편성하고 어선 간 거리를 9.6km를 유지하면 조업에 나설 수 있다. 게다가 기상특보 발효 전에 출항했다면 회항시킬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기상이 나쁘면 경쟁 조업을 피할 수 있어 무리해서 나서기도 한다.

각종 해난 사고에 대비한 제도들 역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102해진호에 앞서 욕지도 남쪽 37해리 해상에서 전복된 채 발견돼 선원 9명 전원이 숨지거나 실종 상태인 제주선적 제2해신호의 경우, 엉터리 위치보고와 안전 장비 오류로 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풍랑특보가 발효된 해역에서 조업 중인 어선은 12시간 간격으로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제2해신호가 실제 뒤집힌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은 8일 오후 8시 55분께다. 그런데 이로부터 1시 48분 후인 오후 10시 43분, 제주어선안전조업국에 제2해신호 위치보고가 들어왔다.

제2해진호 선단장이었던 105명진호가 레이더에서 사고 선박의 어구를 표시한 전자 부이를 제2해신호로 착각해 ‘정박 중’이라고 통지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국은 9시간이 지난 9일 오전 6시가 넘어서야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

각종 안전 장비도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2011년부터 모든 어선에 GPS 기반 선박입출항자동신고장치(V-PASS)와 자동선박식별장치(AIS) 등 ‘선박위치발신기’ 부착을 의무화했다. V-PASS는 외부에 설치된 송·수신 안테나가 거치대에서 분리되거나 어선이 좌우로 70도 이상 기울면 어선 위치와 구조 신호를 자동으로 발신한다. 그런데 신호 통달(송수신)거리가 30km 남짓이라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근해어선엔 무소용이다. 제2해진호도 마찬가지. 사고 전후로 해경 상황실엔 조난 신호가 닿지 않았다.

이는 사고가 나면 으레 지적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 이번에도 바뀐 것 없이 잊히고 있다. “한평생 고생만 한 내 동생 몸뚱이라고 만져 볼 수 있게 제발 찾아만 달라”. 동생을 기다리던 제2해신호 기관장 윤 씨 누나의 절규가 계속해서 귓전을 맴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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