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개장 10주년, 부산시민공원을 걸으며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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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페이퍼랩 본부장

미군부대 폐쇄 후 공원 재탄생
1만 그루 나무 등 볼거리 풍성

무분별한 공간 차단·안내방송
시민들 자유로운 공원 이용 방해

삶의 질 위한 공원녹지 수요 높아
공원 운영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다음 달이면 부산시민공원이 딱 열 살이 된다. 허남식 부산시장 시절이던 2014년 5월 1일 문을 열었다. 일제시대 경마장으로,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로 쓰인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전체 넓이가 14만 평(47만 3911㎡)으로, 부산진구 범전동과 연지동 도심에 걸쳐 있다. 억눌렸던 시간의 반작용인지 주변으로 ‘숲세권’을 내건 개발이 한창이다.

초읍에서 내려온 부전천과 전포천이 나란히 공원을 흐른다. 나중에 동천과 합류해 바다로 간다. 사람들이 풀어준 관상어를 비롯해 잉어, 고둥, 물새, 오리, 청거북 따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공원의 생태계는 북동쪽 화지산을 통해 성지곡어린이대공원, 백양산, 금정산으로 이어진다. 다만 초읍고개에서 단절된 것이 흠이다. 생태통로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철따라 달라지는 나무를 보는 것이 시민공원의 큰 즐거움이다. 110만 그루가 있고 큰 나무(교목)만 보면 1만 4000그루에 달한다. 사람 구경도 재미있다. 잔디밭에서 도시락 먹는 연인, 도심백사장에서 쉬는 가족, 유채꽃밭에서 사진 찍는 중년, 맨발걷기하는 어르신…. 이곳이 없었다면 다들 어디로 갔을까. 공원이 얼마나 중요한 인프라인지 매일 절감한다.

연지동에 사는 필자는 시민공원을 걸어서 출퇴근한다. 주말에도 산책을 간다. 지난 10년간 이곳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흐뭇한 심정이다. 갈수록 나무가 풍성해지고, 아쉬운 대로 볼거리도 늘었다. 하지만 ‘옥에 티’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있어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앞으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공원을 다니면서 불편한 점은 길을 막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공사를 한다거나, 잔디를 깎는다거나, 페인트칠을 한다거나, 덱 바닥이 미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동선을 왜곡하는 일이 잦다. 최근에도 부전천 옆에 황톳길을 조성한다고 며칠째 메인 산책로를 막아버렸다. 공사할 때나 잔디 깎을 때 길을 꼭 전부 막아야 하는지, 바닥이 미끄러울 때 길을 막는 것 말고 대안은 없는지 궁금하다. 공간에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이 공원의 최우선 조건이다.

공원에서 또 거슬리는 것은 계속되는 안내방송이다. 쓰레기, 흡연, 음주, 반려견, 코로나, 주차 등 각종 금지·주의사항을 알리는 방송이 수시로 나와 평화로운 산책을 방해한다. 압권은 ‘청렴송’. 청렴하자는 캠페인성 노래를 왜 일반 시민들이 공원까지 와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원은 국민계몽의 장이 아니다. 상식에 맡기든가, 필요하면 다른 방법을 찾자.

시민공원은 부산시 산하 부산시설공단에서 관리한다. 필자가 지켜본 느낌으로는 질서정연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하다. 어린이대공원도 마찬가지다. 새로 생긴 북항친수공원도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관리’는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시민적 욕구를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공원 개장 때 운영 주체를 놓고 이미 논란이 있었다. 단순한 ‘시설관리’를 넘어 창의적인 프로그램 개발·운영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다. 대안으로 민·관 협치 방식이 제시됐지만 결국 시설공단이 맡았다. “공원 운영의 핵심 가치는 개방이다. 시민들이 즐기지 못하는 공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2014년 4월 시설공단 고위 관계자의 인터뷰다. 개장 10주년을 맞는 동안 시설공단은 그 약속을 잘 지켜왔는가.

공원이 ‘도화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민들이 자기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듯 자유롭게 즐기게 하자는 것이다. 그 위에 공연, 전시, 이벤트도 가미될 수 있다. 관리자 편의적으로 운영돼선 곤란하다. 본말전도다.

그래서 좀 더 근본적으로 공원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인공적 요소를 줄여보는 건 어떨까 싶다. 관리는 최소화하고 일정 기간 ‘휴식제’ 같은 것을 도입해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은 가지치기나 풀 깎기 등이 계속돼 자연스러움이 덜하고, 작업하느라 트럭과 중장비가 오가는 통에 늘 어수선하다. 부전천이 전포천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도 인위적인 ‘관리’의 손길이 덜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10일 총선을 앞두고 〈부산일보〉는 최근 시민들에게 ‘공통공약’을 받아봤다. 흔히들 떠올리는 거대 현안 말고도 생활의 변화를 바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늘을 갖춘 산책길 조성, 학교 신설, 병원 확충 같은 것이다. 정치와 행정의 궁극적 지향이 어디여야 하는지, 선거라는 절차가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했다.

마침 지난달 18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북구 화명수목원에서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부산 전역에 생활밀착형 공원녹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러기에 앞서 이미 있는 공원을 잘 가꾸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집행이 곧 정책이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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