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한동훈의 모비딕 활용법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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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편집부 차장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 덕분이라 해두자. 10년 만에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을 다시 읽기 시작했던 건. 이번이 3번째이다. 모비딕은 한 위원장의 뜻밖 행보에 의해 ‘역주행’했다. 한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법무부장관 임기 마지막 날이자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당일 예비 고등학생에게 모비딕을 선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와 동시에 ‘진짜 정치 초보’로서 총선이라는 큰 바다로 나가야 할 중요한 순간에 ‘왜 모비딕을 선물했을까’라는 궁금증이 확산됐다.

소설 모비딕은 고래잡이 선원들이 거대한 향유고래인 모비딕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작품이다. 모비딕을 잡기 위해 나선 모든 이들이 결국 다치거나 죽으면서 모비딕은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라는 상징성을 내포한다. 특히 소설 속 주인공 에이해브 선장과 스타벅 일등항해사의 리더십은 현재까지도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회자된다.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소설 속 인물, 에이해브는 복수의 화신이다. 모비딕과 사투를 벌이다 다리를 잃은 후 무모하게 모비딕을 잡으러 다닌다.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배에 함께 탄 선원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면 스타벅은 합리적 성향의 인물로 벼랑 끝으로 치닫는 에이해브를 견제한다.

그렇다면 한 위원장은 국힘 수장이 된 후 모비딕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한 위원장이 그동안 보여온 행보로 짐작하면, 모비딕은 누구도 쉽게 잡기 힘든 총선 승리 또는 대한민국의 미래로 풀이된다. 또 윤석열 대통령, 한 위원장,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모두 모비딕을 잡기 위해 치열한 승부를 벌이는 인물들이다. 국힘이라는 배의 선장으로서 한 위원장은 에이해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타벅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법하다.

최근에서야 그 고민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한 위원장이 현 정부의 역린인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을 놓고 윤 대통령과 정면충돌한 점에서 에이해브보다는 스타벅의 길을 가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윤 대통령과 ‘친윤(친윤석열)’은 많은 국민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김 여사 명품백 논란을 해결하지 않은 채 모비딕을 잡으러 간다는 점에서 무모한 에이해브를 연상시킨다.

한 위원장은 또 다른 에이해브에게도 일침을 날렸다. 바로 이재명 대표와 ‘운동권’ 세력들이다. 국회 상임위 중 코인 거래 논란,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이재명 사법리스크. 이보다 앞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2020년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성비위 의혹 등 이른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민주당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반성은커녕 내로남불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들에게서 목적을 취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에이해브가 떠오르는 건 비단 나뿐일까?

중요한 건 앞으로다. 소설에서는 모비딕을 잡으러 간 사람들이 결국 에이해브의 광기에 끌려 화자인 이슈메일을 제외하고 모두 수장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제 첫 걸음을 뗀 한 위원장의 행보가 소설처럼 선원들을 비참한 최후로 이끌지, 아니면 모두 생존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줄지 ‘한동훈의 모비딕’이 자못 궁금하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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