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입항 화물선에 ‘뇌물 지옥’ 같은 뒷돈 요구 농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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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이지리아 입항 회고담
검역관 세관원 차례로 뇌물 빼먹어
검수원 사망 사고에 책임져라 생떼
가족 농성에 돈으로 무마할 수밖에
사사건건 온갖 먹이 사냥·농간 횡행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에서 뜻하지 않은 해상 사고를 맞았다. 사진은 한국의 한 항구 묘박지에 정박 중이던 화물선에서 외국인 선원이 부상을 당해 구조대에 의해 이송되는 모습. 울산해양경비안전서 제공=연합뉴스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에서 뜻하지 않은 해상 사고를 맞았다. 사진은 한국의 한 항구 묘박지에 정박 중이던 화물선에서 외국인 선원이 부상을 당해 구조대에 의해 이송되는 모습. 울산해양경비안전서 제공=연합뉴스

2021년 7월 9일 연합뉴스에 의하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어선 3척으로 수산업을 하던 한인 사업가 A씨가 수산해양자원부(MFMR)로부터 불법조업 혐의로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고 당국에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에라리온에 투자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숨졌다고 한다. A씨의 죽음은 어족자원 보호라는 미명 아래 당국의 과도한 단속이 시행된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 주변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A씨는 현지에서 수년간 사업을 하면서 400명 이상의 현지인을 고용한 유력한 투자자로 알려졌다. 이러한 세론을 의식한 탓인지 시에라리온 정부는 정보통신부 명의의 보도 자료를 통해서 “유족과 한국 정부, 한국 국민에게 진정한 애도를 표한다”면서 MFMR 관리들의 부당함과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착수했다고 공표했다.

외국 선박의 입항 과정에서는 다양한 검역 과정과 절차가 있기는 하다. 한국과 미국의 검역관이 동시에 제주도 감귤을 검역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외국 선박의 입항 과정에서는 다양한 검역 과정과 절차가 있기는 하다. 한국과 미국의 검역관이 동시에 제주도 감귤을 검역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 기사를 읽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불현듯이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Port Harcourt)항에 입항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소말리아 어부들이 해적으로 돌변하기 전에는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가 해적으로 제일 악명 높았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이지리아는 부족 간 대립, 종교 분쟁, 쿠데타 등으로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은닉한 무기가 많다고 했다. 내가 승선했던 오션스타호는 태국에서 쌀을 싣고 나이지리아의 포트하커트항으로 가게 되었다. 그 쌀은 대통령 선거용으로 대국민 구휼미라고 했다. 포트하커트항은 해적의 소굴이라는 니제르델타 해역–서부 아프리카의 엉덩이 부분에 있다-에서 보니 강을 타고 내륙으로 35마일을 더 들어가야 한다. 입항 수속을 하는 검역묘지는 16마일 지점에 있었다. 거기까지는 도선사가 나오지 않고 선장이 직접 배를 몰고 들어가야 했다.

한때 서브 아프리카도 해적의 소굴이었던 적이 있다. 사진은 청해부대가 아프리카 해역에서 실제로 해적선(위쪽 배)을 추적하는 모습. 지난 2011년 자료다. 연합뉴스 한때 서브 아프리카도 해적의 소굴이었던 적이 있다. 사진은 청해부대가 아프리카 해역에서 실제로 해적선(위쪽 배)을 추적하는 모습. 지난 2011년 자료다. 연합뉴스

대리점의 연락을 받고 강 중간에 있는 검역묘지에 투묘(投錨, 배를 정박하고자 닻을 내림)를 했다. 바로 건너편에 작은 마을이 있고 나루터도 있었다. 현문사다리를 내려놓고 기다렸으나 제일 먼저 와야 할 대리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VHF16 채널에서 대리점 호칭인 ‘보니 마린(BONNY MARINE)’을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강 상류에서 보트 한 척이 새하얀 물 갈기를 앞세우고 달려왔다. 그런데 꽁무니에는 빈 수레(Cargo Tray)를 하나 달고 왔다. 관리들이 올라왔다. 모두 네 명이었다. 검역관과 출입국 담당 관리들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유창한 영어로 선장의 기를 꺾었다. “먼 항로를 거쳐 여가까지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아프리카의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나이지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에 발린 인사말이 끝나자 먹이 사냥이 시작되었다. 나이지리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입항 시 제출 서류가 많기로 유명하다, 선원명부, 휴대품신고서, 예방 접종 신고서, 검역 카드, 입항 항구목록, 마약 신고서, 동물·조류 신고서, 무기 신고서, 화폐 신고서…….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은 강을 타고 내륙으로 35마일을 더 들어가야 있다. 입항 수속을 하는 검역묘지는 16마일 지점에 있었다. 사진은 부산 남외항의 묘박지 사진. 정대현 기자 jhyun@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은 강을 타고 내륙으로 35마일을 더 들어가야 있다. 입항 수속을 하는 검역묘지는 16마일 지점에 있었다. 사진은 부산 남외항의 묘박지 사진. 정대현 기자 jhyun@

늘 하는 사냥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검역관이 엄숙한 표정으로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캡틴, 당장 배를 몰고 외항으로 나가야 되겠다. 이것 봐라!” 그는 검역 카드 한 장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이 선원은 황열 예방 접종 유효기간이 다됐다. 위험해서 배를 입항시킬 수 없다.” 그는 이제 볼일 다 봤다는 듯이 손바닥을 탁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출입국 담당 관리가 말했다. “캡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여기서 예방 접종하면 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바쁜데 시간 끌지 말자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쌀 안 주고 입항한 배는 한 척도 없다. 우리도 쌀 못 가져가면 목 잘린다.”

해상에서는 아주 다양한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진은 부산항 북항 일대에서 해양사고 통합 대응훈련이 펼쳐지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해상에서는 아주 다양한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진은 부산항 북항 일대에서 해양사고 통합 대응훈련이 펼쳐지는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그게 시작이었다. 빈 수레에 쌀을 가득 싣고 난 후에야 입항 허가서에 서명을 해주었다. 그들이 돌아가자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세관 보트가 달려왔다. 그들도 빈 수레를 달고 왔다. 세관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다 안다는 듯이 선장을 닦달했다. “캡틴, 왜 세관 허가도 없이 화물을 유출시켰나? 관세법을 위반했으니 자인서 써라.” 각본을 짜고 그대로 행동하는 연극배우들이었다. 또 쌀을 안 뺏길 수가 없었다. 세관원도 쌀을 한 수레 가득 싣고 갔다. 대리점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부두에 접안을 했다. 이번에는 농산물검사국 직원이라는 친구가 검사용 샘플이 필요하다며 각 화물창마다 전후좌우 각 한 포대씩 걷어 쌀 16포대를 가져갔다. 마약단속반원은 어느 선원의 침실에서 감기약 콘택600 한 알을 찾아내어 벌금 500달러를 내라고 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유치장에 감금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콘택600 속에도 미량의 마약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하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화물창에서 네트 슬링 위에다 포갬포갬 쌓은 쌀을 데릭윈치로 부두에 늘어선 트럭 위에다 부렸다. 트럭 위에는 쌀자루를 헤아려 기록하는 검수원이 있었다.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에서 쌀 하역 작업을 하던 중 검수원 1명이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은 쌀 하역 작업 모습. 연합뉴스 나이지리아 포트하커트항에서 쌀 하역 작업을 하던 중 검수원 1명이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은 쌀 하역 작업 모습. 연합뉴스

오후 4시경이었다. 하루 중에 가장 무더운 때였다. 부두에서 갑자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강물에 빠졌다!” 트럭 적재함 위에 봉분같이 쌓아 올린 쌀자루 위에 앉아 있던 검수원이 미끄러져 부두에 떨어졌던 것이다. 깜빡 졸았는지, 아니면 더위를 먹어 잠시 정신이 아뜩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부두에 떨어졌다가 다시 강물에 추락했다. 강물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검수원은 빠른 물살에 휩쓸려 금방 떠내려가고 말았다. 사람들이 아우성쳤지만 구조할 방법은 없었다. 비보를 듣고 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여자들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믿어지지 않는 듯 배와 트럭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점점 수가 많아지자 그들의 눈빛에 원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놈의 배가 쌀만 싣고 오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었다. 소리 없이 흘리던 눈물이 청승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누구의 선동인지 농성으로 변했다. “내 자식 살려내라! 내 가족 살려내라!” 애먼 선원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당장 배에 몰려와 싸울 기세였다.

쌀자루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쌀자루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었지만 원하지 않았던 불상사가 생길까 봐 선원들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소란이 커지자 하역 회사에서 연락을 했는지 대리점이 달려왔다. 유족들의 살벌한 분위기를 파악한 대리점은 선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캡틴, 물론 선원들의 잘못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하역 작업을 하는 도중에 일어난 불상사이니 유가족들을 좀 달래주는 게 좋겠다. 선원 대표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면 된다. 약간의 조의금과 함께 간소한 음식상을 차려서…… 전에도 이런 사고가 있었는데 그렇게 달랬다.”

선장은 하이에나 떼 같은 사람들의 행태에 질려서 유족을 상대하기도 싫었다. 선원들은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러자 해군 상사 출신인 삼등항해사가 총대를 멨다. 검수원이 추락한 자리에 백지를 깔고 소주 한 병에 과일 서너 개, 북어 한 마리, 촛불, 그리고 향을 피워 궤연(几筵)을 차렸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인의 영혼을 달래는 조사를 읊었다. “아 슬프도다.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하늘도 무심하고 땅도 무정하도다. 생때같은 목숨이 이리도 허무하게 가시다니…… 오호통재라,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불쌍한 영혼이시여. 부디 왕생극락하소서! 상향.”

배의 각종 사고를 막고 성공적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고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 김종찬 제공 배의 각종 사고를 막고 성공적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고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 중인 모습. 김종찬 제공

세상천지에 이런 연극이 또 있을까? 삼등항해사의 구성진 청승에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에워쌌다. 망자를 위로한 삼등항해사가 선원들이 갹출한 조의금 50달러를 유족 대표에게 전달하자 농성은 그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출항할 때까지 선장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검역관, 세관원에게 빼앗겨 부족한 쌀과 항해 중 화물창 외벽에 발생한 습기로 인해 곰팡이 핀 쌀 문제 등을 해결하느라고 여간 골치를 썩이지 않았다. 무덥고 습기 많은 태국에서 쌀을 선적했기 때문에 싸늘한 희망봉을 지나올 때 화물창 외벽에 땀이 생겼다. 그건 어느 배나 마찬가지다. 환기를 시켜야 했지만 파도가 거칠고 날씨가 나빠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문서로 작성하여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엄청난 뇌물을 요구했다. 대리점은 대리점대로 중간에서 온갖 농간을 다 부렸다. 출항을 해서 니제르델타 해역을 벗어나자 모두들 지옥에 떨어졌다가 탈출해 천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글/ 김종찬 해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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