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설익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눈칫밥' 먹는 의회직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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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내쫓거나 대놓고 눈치 주는 사람은 없는데, 그래도 신경 쓰이죠.” 요즘 청사 구내식당에서 ‘눈칫밥’ 먹는 경남 통영시의회 사무국 직원들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꼬박 1년 만에 재현된 사무국 인사권 갈등. 통영시장과 의장 간 힘겨루기에 애먼 공무원만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다.

2022년 1월 13일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에 따라 지방의회 의장은 의회 사무직원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업무 연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인사 운영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통영시의회는 이를 근거로 지난달 5급 직원 1명과 8급 직원 1명에 대한 자체 승진 인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통영시가 발끈했다. 인사 적체가 심각한 상황에 사무국이 자체 인사를 하면 통영시 전체 결원 발생 요인이 적어져 승진이 어렵고 효율적인 인력 배치도 힘들다는 게 통영시 주장이다. 통영시 전체 공무원 1064명 중 의회사무국 소속은 27명이다.

그러면서 ‘통영시-통영시의회 인사운영 협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 협약은 직원 수가 적고 자체 예산이 없는 기초의회 인사권 독립을 위한 보완 장치다. 집행부와 인사 교류, 사무국 직원에 대한 보수 지급·교육 훈련, 휴양시설·건강검진비 등 후생복지사업 지원 근거 등을 담았다.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행정안전부가 내려준 표준안에 맞춰 전국 대부분 지자체와 기초의회가 유사한 협약을 맺었다.

협약을 파기한 통영시는 후속 조치로 시의회 파견 공무직 3명과 청원경찰 1명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앞으로 사무국에서 필요한 인력을 비롯해 직장 어린이집, 구내식당, 직장상조회, 청사·물품 관리, 전산시스템, 보수지급 업무까지 의회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시의회가 홀로 사무국을 운영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선 넘은 보복 조치에 참다못한 소수 야당 시의원들이 “몰상식과 갑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태”라며 여당 의장에게 힘을 실었다. 제9대 통영시의회는 국민의힘 8명, 더불어민주당 4명, 무소속 1명이다.

정작 여당 의원들은 사태의 책임을 같은 당 식구인 의장 탓으로 돌렸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들은 “의장이 동료 의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인사를 단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오는 7월 현 의장이 물러나고 후반기 의장단이 새로 구성되면 원상태로 되돌려 놓기로 시장과 협의를 마쳤다고도 했다.

이 과정에 당사자인 의장은 배제됐다. 노골적인 ‘의장 패싱’이다. 통영시와 시의회는 작년 이맘때도 사무국장 승진을 놓고 충돌했다.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 중재로 시장과 의장이 인사 운영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이번엔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이다.

통영시 사례를 두고 개정안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사권을 뒷받침할 ‘예산편성권’과 ‘조직구성권’은 여전히 집행부가 쥐고 있다. 이대로는 인사권 독립은커녕 상호 감시와 견제조차 불가능하다. 피해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 지방자치 의미와 기능을 살리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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