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우리는 왜 경찰과 정치권을 믿지 못하게 됐나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현정 사회부 차장

경찰이 지난 10일 부산에서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억측과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사건 발생 이후 40여분 만에 이뤄진 물청소에까지 다다랐다. 물청소를 놓고 증거 인멸 시도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입장문을 내고 피의자로부터 범행도구를 압수하고 범행 입증에 필요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이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경찰 수사가 ‘정치테러 은폐수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쩌다 경찰을 믿지 못하게 됐을까. 이번 사건만 놓고 보면 경찰이 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선거를 99일 앞두고 제1야당 대표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곳에서 칼부림을 당했다. 야당 대표의 목숨을 노린 계획 범죄였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왜곡된 정치적 신념에 의한 범죄였지만, 경찰은 이 정치적 사건에서 인위적으로 정치색을 빼려 과도하게 많은 것들을 비공개 테두리로 감쌌다. 경찰 수사가 다가올 총선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살인을 시도했는데 ‘누가’ ‘왜’ 라는 질문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기본적인 질문이다. 기자들은 매일 수사본부 브리핑에 참석해 범행 동기,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줄 당적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범행 동기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당적은 정당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항의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는 법 위반’이라는 기치 아래 “수사 중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기계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심지어 와이셔츠가 1차 충격을 막아 이 대표를 극적으로 살렸다는 사실 또한 사건 발생 8일 후인 종합수사결과 발표 때야 알려졌다.

그 사이 ‘범인이 사용한 흉기가 나무젓가락이다’ ‘케이크용 빵칼이다’ ‘자작극이다’ 식의 가짜뉴스가 전국을 휩쓸었다. 범인의 신상 비공개 이유마저 비공개한 한국 경찰을 비웃듯, 미국 뉴욕타임스에는 범인의 신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경찰 수사의 본질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게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범인이 왜, 어쩌다 왜곡된 정치 신념에 사로잡혀 범행에 이르게 됐는지, 어떤 정치 이력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드러난 것이 없다. 이렇게 해서 재발 방지책을 논의할 수 있을까. 경찰이 지나친 정치적 고려로 스스로 국민 신뢰를 잃고 권력이 바뀔 때마다 권력 눈치를 보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민주당이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수사 축소”와 “은폐”를 주장하는 일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이 대표 서울대병원 전원으로 지방 의료 무시를 몸소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는 민주당은 사건 직후 ‘2등 국민’ 취급을 받은 부산 시민의 상실감을 어루만지기는커녕 ‘보수 언론 프레임’에 걸려든 우매한 감정으로 치부했다. 부적절한 서울대병원 전원과 헬기 이송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고 비난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번엔 재수사를 요구하며 정치 프레임에 짜맞추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급기야 민주당은 지난 16일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을 국회 증인으로 출석시키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공정성과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수사 책임자를 국회로 불러들여 압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게 됐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