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산표' 복합리조트, 지금이 기회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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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경제부 차장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2024’가 숱한 화제를 낳으며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문득 2년 전 라스베이거스를 들렀던 때가 떠올랐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하는 그랜드 캐년 투어 참여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아이를 데리고 죄악의 도시(sin city)로 대변되는 도박 도시에 잠시라도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께름칙했던 탓이다. 하지만 편견은 금세 깨졌다. 묵었던 호텔의 ‘친절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물가는 비싸지 않았으며, 아이에게도 ‘안전’했다. 라스베이거스가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이틀을 더 머무르면서 구도심 투어까지 참여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 사진을 통해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라스베이거스가 달리 읽혔다. 투어 가이드는 말했다. “카지노는 라스베이거스 매력의 10%도 안돼요.”

맞다. 라스베이거스는 더 이상 죄악의 도시가 아니었다. 개성 넘치는 호텔들과 쇼핑물로 세계 각국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도시였다. CES2024로 20만 객실에 가까운 라스베이거스 전역의 호텔이 만실에 가까울 만큼 성황을 이룬 마이스 도시였다. 다양한 관광·마이스 시설을 갖춘 복합리조트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는 거대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라스베이거스의 성공적인 변신은 세계를 자극했다.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로 등극했던 마카오도 최근 초대형 복합리조트 등을 통해 글로벌 관광·마이스 도시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마이스 활성화 등 관광시장 다변화를 통해 코로나19로 급감한 관광 수요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다.

최근 휴가차 찾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의 제주도라 불리는 푸꾸옥에서도 복합리조트가 큰힘을 발휘했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차고 넘쳐 카지노 근처조차 갈 시간이 없었다. 복합리조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거대한 복합리조트 주변의 호텔들은 물론 전통시장, 항구, 미술관, 각종 체험시설들도 덩달아 호황을 이뤘다. 도시 활기의 정점에 복합리조트가 우뚝 선 셈이다.

부산은 안타깝게도 복합리조트 무한경쟁에서 한참이나 뒤쳐졌다. 수년 전 복합리조트 핵심 시설 중 하나인 내국인 허용 카지노(오픈 카지노)가 발목을 잡으면서 사업이 무산된 이후 제자리에 멈춰섰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 특별법’ 제정을 약속하면서 부산에 복합리조트 조성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착공되는 가덕신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성장하고 부산이 관광·마이스 거점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복합리조트 건립이 절실하다.

문제는 어디에 어떤 복합리조트를 짓느냐다. 북항이나 영도, 가덕도, 기장 등 부지 선정부터 테마파크, 공연장, 회의장 등 다양한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부산’만의 차별화된 공간을 구축하는 데 민관학이 적극 협력해야 한다. 복합리조트에 대한 세계의 흐름이 달라지고 국내 카지노 관련법이 여전히 미비한 현실에서 외국 자본에만 의지하다간 수년 전 실패가 재현될 우려가 크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부산의 국내외 경쟁도시들은 복합리조트 건립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부산의 이니셔티브를 쥔 차별화된 ‘부산표’ 복합리조트, 미래 세대를 위해 기성 세대가 구현해야 할 미룰 수 없는 과제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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