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부산, 무엇으로 살 것인가?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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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부 대물림 골몰하는 부자만 수두룩
첨단 산업 재투자 도전 정신 상실
 
급변하는 산업 지형서 변방으로 밀려
국가 발전 거점도시에서 탈락 위기
 
전통산업 안주로는 도시 미래 없어
‘부자’ 아닌 ‘자본가’ 전성시대 염원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GSCO)에서 열린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협약식'에서 참석자들과 버튼을 누르는 퍼포먼스를 마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GSCO)에서 열린 '새만금 이차전지 투자협약식'에서 참석자들과 버튼을 누르는 퍼포먼스를 마친 뒤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 부자만 있고, 자본가는 드뭅니다.” 부산의 도전적인 산업계·학계 인사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부산에 기술과 설비 등 제조 기반에 자본을 재투자해 신사업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하는 도전적인 기업인, 자본가를 찾기 어렵다는 속내였다. 세무사들도 지역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가 ‘부자 상속’이라고 귀띔한다. 부산의 부자들은 부산에서 번 돈을 새로운 산업에 재투자하는 큰 그림보다는, 큰 상속세 없이 자식에게 물려줄 절세만 고심한다는 이야기다.

부산 부자들이 가진 것을 움켜쥐고 대물림을 고민하는 사이, 국내외 산업 지도는 급변하고 있다. 부산만 갈수록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반도체·이차전지·자율주행차·전기차·바이오·인공지능(AI) 산업을 키우기 위해 추진 중인 국가첨단산업벨트·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부산은 제대로 뽑히지도 못했다. 파워반도체 특화단지로 겨우 체면치레했을 뿐이다. 파워반도체는 수도권의 메모리 중심 반도체와는 산업의 규모가 다르다. 그만큼 정부는 부산을 국가 발전 거점도시나 산업도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냥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뿐이다.


정부의 첨단 분야 대학 지원 사업에서도 부산은 판판이 물을 먹고 있다. 지역에서는 바이오·이차전지 등을 앞세운 전남대, 전북대, 경북대 등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기조가 기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 대학 총장은 중앙부처에 R&D 예산을 신청하러 갔더니 “부산에 정부 예산을 받을 첨단기업이 있느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더라고 하소연한다. 파트너로 삼을 기업이 없는 슬픈 현실이다. 울산의 현대차, 경남의 우주항공, 경북 포스코가 이차전지, 수소 등으로 확장하면서 지역 기업과 대학을 4차산업으로 견인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그 와중에 2일 전북 새만금산업단지에는 LS그룹이 1조 8400억 원의 ‘이차전지 소재 제조시설’ 투자식을 가졌다. 이어 에코프로·LG화학·SK온·GEM코리아 등 31개 첨단 기업이 이미 6조 6000억 원의 투자와 3만 2000명의 고용을 약속했다. 10년 뒤면 부산이 전북보다 산업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상황이다. 인천공항과 앰코코리아 등 반도체 패키징과 후공정 분야 세계 2·3위 기업을 갖고 있는 인천도 첨단 산업에서 부산을 앞서가고 있다. 부산에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변화에 편승하지 못한 것이 현재 박형준 부산시장의 탓만은 아니다. 박 시장도 취임 직후 초창기에 기업 유치를 위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을 만났다. 하지만, “검토해 보겠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현대는 울산, 두산은 창원 등 대기업 각자의 투자 지형도를 갖고 있고, 대기업 총수라도 자신만의 고집으로 이중 투자를 결정하기 힘든 구조다. 끊임없이 타진해야겠지만, 당장은 테슬라·삼성전자·LG 배터리와 같은 막강한 투자를 통한 지역 산업 생태계 형성은 불가능한 성장 방식이다.

그 사이에 지역은 미래 자동차는 물론이고, 반도체, 바이오는 꿈조차 꾸지 못할 정도다. 부산을 어떻게 키우자는 것인지, 어떤 산업으로 미래를 열 것인지, 인재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없는 상황이다. 정작 이를 주도하는 부산시는 온갖 MOU와 구호만 화려할 뿐, 구체적인 액션 플랜과 충분한 예산 확보, 전문성 있는 행정 지원은 보이지 않는다. 2030월드엑스포도 꼭 유치해야겠지만, 3차산업만으로 300만 이상의 대도시를 지탱할 수는 없다. 제조업이 없는 도시에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조차도 제조업 부흥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인프라법, 반도체법을 바탕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면서 기업 유치에 나서는 이유다.

결국 답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한다. 부산의 자본으로, 부산 기업 중에서 도전적인 중소·중견기업을 스타 기업으로 키우는 방법뿐이다. 시간은 결코 부산의 편이지 않다. 오지도 않을 대기업을 기다리느라, 세월만 낭비할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쌓은 자본을 지역에 재투자해 첨단 산업을 일굴 새로운 얼굴의 자본가가 곳곳에서 성장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나마 최근 코렌스, 금양, 리노, 파나시아, 퓨트로닉 등 몇몇 지역 기업들이 전기차와 이차전지, 반도체, 환경 등 첨단 분야에서 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지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골든 타임은 지나가고 있다. 쇠퇴하는 전통산업에 안주해서는 미래가 없다.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낙오될 것이다. 세계 각국은 물론이고, 국내 각 도시도 그렇게 뛰고 있다. 산업 지형의 개편, 이에 따른 인력 양성 시스템이 절실하다. 부산에 새로운 산업 지도를 그리기 위해 부자가 아닌 ‘자본가’들의 전성시대를 염원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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