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별 / 이상국(1946~ )
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
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
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
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
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
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별을 닦으면 캄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1998) 중에서
어둠이 얼마나 짙고 고요해져야 ‘푸른 어둠’이 될까? 어둠이 푸름으로 뒤덮여 천지가 아름다워졌을 때 별은 ‘수줍은 듯 반짝이’며 돋아난다. 그 놀라운 변동에 ‘캄캄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떨림을 느낄 수 있고, ‘눈물이 떨어지는’ 충격을 맛볼 수 있다. 그때 푸른 어둠은 별을 비롯한 우주 전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질료다.
이 모든 해석은 어둠에 특별한 색채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푸름’이라는 색채는 신비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이에 나희덕 시인은 사랑으로 아픈 밤을 ‘푸른 밤’이라 했고, 이상화 시인은 타오른 열정을 ‘푸른 피’라는 말로 나타낸다. 푸른 이미지 계열은 대상의 생동감을 높여 준다. 그렇다면 소멸의 두려움을 가라앉힐 수 있는 ‘푸른 죽음’이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세상의 모든 어두움은 너에게로 가는 길’이 됨으로써 ‘푸른 죽음’이 된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