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서울시장이 지역균형발전 외치는 나라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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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사회부 차장

균형발전 역설 오세훈 시장의 ‘4개 강소국론’
수도권 올인 한계 직면 대한민국의 자기 반성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키워 신성장 엔진 돼야

초등학생 딸아이와 세계 국가별 수도 이름 맞히기 놀이를 하다보면 늘상 헷갈리는 나라들이 있다. 호주 수도하면 시드니부터 떠오르지만 캔버라가 맞고, 캐나다 역시 올림픽을 치른 몬트리올이 먼저 입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오타와가 수도다. 브라질 수도는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가 아니라 브라질리아고, 가까운 베트남도 경제적으로 발달한 호찌민이 아닌 하노이를 수도로 두고 있다. 이들 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 경제, 교육, 문화 기능 등을 주요 도시별로 적절히 분산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미국만 해도 정치·행정의 중심인 국가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고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를 보유한 뉴욕이 ‘경제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의 본사가 밀집한 실리콘밸리가 있어 ‘글로벌 혁신 수도’로 불린다. 일본은 2014년부터 ‘국토 그랜드 디자인 2050’ 계획을 수립하고,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나고야 중심의 중부권, 오사카 중심의 관서권을 ‘3대 메가시티’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도 상하이, 베이징, 충칭, 광저우, 우한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를 15곳이나 보유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수도를 물었을 때 서울 외에 다른 도시를 거론할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교육 의료에 하다못해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까지 모든 국가 기능과 인력, 자원이 철저히 서울 한 곳, 넓게 보면 수도권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이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50.7%, GDP(국내총생산)의 52.5%, 일자리의 58.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한국의 GDP 수도권 집중도는 일본(24.3%)의 2배, 미국(5.1%)의 10배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명색이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부산과의 비교에서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부산의 인구는 327만 명으로 서울(935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부산 GRDP(지역내총생산)는 113조 원으로 서울(528조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매출액 기준으로 전국 100대 기업에 속하는 부산 기업은 한 곳도 없고, 그나마 1000대 기업에 28개가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한수 이남 최고 명문이라는 부산대가 서울의 10위권 대학과 비교해도 위상이 흔들리는 실정이다.

행정 수도를 표방하며 2012년 세종시가 출범한 지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행정기관 3분의 2 이상이 이전됐고, 4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도 갖췄다. 하지만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에 관해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울경의 시각에서 볼 때는 수도권 영역의 확장으로 여겨질 뿐이다. 편중이라는 표현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한국은 철저하게 한 쪽으로만 기울어진 ‘기형 국가’다.

이런 가운데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대척점에 있다고 할 만한 부산과 서울, 양대 도시 수장의 대한민국 발전 해법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월 한국정치학회가 부산에서 개최한 하계 학술대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졌다. 박 시장은 압축성장 이면에 수도권 일극주의를 초래한 옛 ‘발전국가’ 모델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며 수도권과 지방이 공생·발전하는 ‘공진국가’ 모델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이날 특히 눈길을 잡은 것은 오 시장의 지방 거점 대한민국 개조 모델이다. 오 시장은 전국을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등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하나의 강소국가로 키워야 한다며 이른바 ‘4개 강소국론’을 설파했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안보만 맡고 나머지 권한은 지자체에 넘기는 파격적인 권한 이양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의 이 같은 철학이 평소의 지론인지, 혹은 ‘대권 플랜’의 일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도권 올인 정책’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서울시의 수장이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 타파와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은 것은 대한민국 국토 비대칭 발전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장면이다.

부산과 서울의 라이벌은 국내 도시가 아닌 뉴욕, 도쿄, 싱가포르, 두바이와 같은 글로벌 도시다. 한정된 자원을 계속 서울에 쏟아부으면 한계효용은 감소한다. 서울 역시 ‘동네 여포’로 머물 뿐이다. 우리나라는 ‘잠재 성장력 저하’와 ‘초저출생’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사회적 격차 심화’라는 3대 위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려면 제2도시 부산이 서울 못지않은 혁신거점이 돼 글로벌 허브도시로 우뚝서야 한다. 오 시장의 냉철한 자가진단이 부산 사람 입장에서 반가운 이유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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