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15조 VIP 고객을 잡아라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 기자
지난해 9월 울산시금고를 두고 경남은행과 국민은행이 격돌했다. 시금고 선정은 지자체의 예산을 관리하는 은행을 정하는 일이다. 접전 끝에 경남은행이 울산시금고를 유치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경남은행은 울산 영업점 전체 간판에 ‘울산 경남은행’을 새겼다. 울산과 경남은행이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사건은 금융권에서는 은행 간판을 바꿀만큼 은행이 가지는 지자체 금고 유치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부산 금융권의 최근 최대 화두는 부산시금고다. 부산시 예산 15조 원을 관리할 은행이 24일 최종 선정된다. 지역 은행인 부산은행이 2000년부터 24년간 시금고 주금고를 수성해왔다. 이후 4년에 한 번 벌어지는 입찰마다 한 차례 경쟁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이 도전장을 냈다.
왜 은행들은 시금고에 사활을 걸까. 은행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5조 원 예산 중 은행 계좌에 머무는 돈은 8000억 원 남짓이다. 하지만 ‘예금을 하지 않는 시대’에 예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 입장에서 거액의 예산을 굴리는 고객인 지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고객이다. 수도권 지자체 금고는 시중은행 간 과당 경쟁이 붙어 ‘레드오션’이 됐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시중은행, 국책은행은 지역으로 ‘남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앞다퉈 부산과 상생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후원금을 시금고 선정 전 내놓고 있다. 시금고 평가 항목에 지역 사회 공헌 항목이 엄연히 있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올해 초부터 부산신용보증재단에 출연금 액수로 은행들이 경쟁을 한 것, 최근 잇달아 지역 사회에 거액의 사업비와 함께 정책 지원을 하는 것도 시금고와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백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씁쓸함이 몰려온다. 치열하게 부산에 구애를 던지는 은행들이 24일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 하는 우려에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2028년이나 돼서야 은행들이 또 사회공헌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시라는 15조 원 VIP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지역에 많이 공헌하는 은행이 시금고에 선정됐으면 한다. 심의위원회 심의위원들이 금리, 향후 지역 사회 공헌 예산인 협력사업비 같은 숫자를 꼼꼼히 살폈으면 한다. 또한 15조 원을 맡기는 VIP고객의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4년간 은행이 꾸준히 VIP에게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을지도 꼼꼼히 따졌으면 한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