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문제는 우선순위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사회간접자본은 미래에 대한 투자
공공 자산 많을수록 도시계획 용이
미래지향적 빈집 정책은 공공 매입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던 미군들이 남긴 기록을 보다가 눈물이 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참혹한 전쟁 중에서도 한국의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넋을 빼고 보았다는 기록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시골 어디를 가나 초등학교가 있다는 기록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기록은 한국의 농촌 어디를 가든 큰 건물을 보거든 초등학교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도 한국은 초등교육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에 그들은 큰 놀라움을 나타내었다. 물론 많은 초등학교들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세워진 것이었을 게다. 그렇지만 재정 사정이 형편없었던 시절에도 초등학교 문을 닫지 않았던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하겠다.
사회간접자본이라고 하면 으레 고속도로나 철도를 떠올리겠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 곳곳에 사회간접자본이 널리 깔려 있다. 일자리 안내와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정보를 얻는 기관은 물론 다양한 복지 시설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찾아보면 곳곳에 사회간접자본이 넘쳐나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정말로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을 제대로 공급하고 있는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 아침 온천천에 가끔 나간다. 약간은 어두운 시간인데도 온천천 양변은 사람들로 붐빈다. 부산에서 온천천만큼 접근하기 쉽고 걷기 좋은 곳도 없다. 이른 시간 온천천 양변을 꽉 메운 사람들은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다. 노인의 도시 부산을 정말로 백배 느끼게 되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온천천 전체가 어르신들의 운동기구로 꽉 차 있다. 온천천 가까운 곳에 오랫동안 살면서 온천천의 관리 주체인 동래구와 연제구가 다투어 공사를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쪽 어디에서인가 무엇인가 뜯어내고 새로 세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아주 기이하게도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은 별로 없었다. 유아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었다는 기억은 전혀 없다. 부산과 한국이 직면한 문제 중에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장 심각한데, 그 문제에 대한 부산의 시선이 얼마나 편중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저출산 때문에 도시와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데도 아직 우리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단 이것은 온천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올 여름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가까운 나라들로 많이 갔지만 배울 게 있는 선진국들로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 어린이들이 놀 곳이 있고, 놀이터마다 그 지역의 문화적 콘텐츠가 스며 있는 창의적인 놀이기구와 시설들을 보면서 조금은 놀라는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아이가 귀하고 그들이 우리의 미래라면 어르신의 운동기구를 만드는 만큼 아이들이 나와서 놀 수 있는 놀이시설도 만드는 데 진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투표권이 있는 어른의 시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이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고 젊은이들은 떠나고 고령화된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부산은 빈집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다. 사실 이것도 오래된 문제이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부각되고 있다. 사람이 없어 비어가는 집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는 매우 어렵다. 재생도 사람이 있을 때 효과가 있지, 사람이 떠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빈집에 대한 가장 미래지향적인 대응은 공공이 매입하는 것이다. 공공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 많을수록 도시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수립하기가 좋다. 언젠가 도시가 필요한 건물을 짓고 시설을 확보하고 또 도시의 미관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강제할 수 있으려면 공공이 일정 부분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산시가 나서서 빈집을 사들이는 것이 최선인데 아마 돈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부산시의 예산을 이리저리 따져 보면 여윳돈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재정은 언제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유가 없다면 앞으로는 더욱 여유가 없다. 오랫동안의 정체 속에서도 부산 경제는 여전히 성장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부산시의 예산도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다시 돌아보자. 미국의 원조 자금으로 재정을 어렵게 꾸리던 힘든 시절에도 초등학교는 문을 닫지 않았다. 돈이 없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우선순위이다. 그게 또 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