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지역의 역사·예술·자연 함께 담아낸 '루마 아를'
아트컨시어지 대표
스위스 출신의 유명 컬렉터 마야 호프만이 1억 5000만 유로(당시 한화 약 2100억 원)를 기부해 만든 ‘루마 재단’은 2004년부터 환경, 문화, 교육,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시각예술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
루마 재단은 프랑스 남부 아를의 국영 철도회사 부지에 2013년 전시회, 콘퍼런스, 라이브 공연 등을 통해 예술과 문화, 환경, 교육·연구에 대해 탐구하는 학제 간 창의적 예술단지를 시작했는데, 바로 ‘루마 아를(Luma Arles)’이다. ‘아틀리에의 공원’이라는 뜻의 부속 건물인 ‘파크 데 자틀리에’를 비롯해 ‘그랜드홀’, ‘포르주’, ‘메카닉 제네랄’에서 연중 각종 문화 이벤트가 개최된다.
이 중 연면적 1만 5000㎡ 규모의 ‘타워’가 완공과 동시에 주목받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리츠커 수상자이자 파리의 루이뷔통 재단,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했다. 루마 아를 타워는 단번에 오래된 도시 아를에 현대미를 갖춘 랜드마크가 되었다.
2000년 전 로마 시대부터 역사가 누적된 고도 아를, 15개월간 거주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반 고흐의 도시에 위치할 현대적인 문화공간을 그가 어떻게 풀어낼지는 일찌감치 세간의 관심이었다. 구도심 자체가 뮤지엄인 아를의 역사성과 잘 조화될 수 있는 것이 기본 목표였다. 루마 아를은 게리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스테인리스 벽돌 1만 1000개와 유리 박스 53개가 일정한 패턴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원통형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뒤틀리는 형태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온도의 햇빛을 반사한다. 이는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연상되기도 하며, 레보드프로방스 지방의 거친 암석 같기도 하다.
타워 저층부는 지름 54m의 투명한 원통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내외부를 완충하는 동시에 건물의 라운지 역할을 한다. 구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고대 로마 유적 중 하나인 ‘아를 아레나’가 오버랩 된다. 높이 56m 타워의 최상층인 9층 테라스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크로 평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론강과 카마르그 늪지, 알피 산맥, 도시 아를이 한눈에 들어온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7월 개관한 루마 아를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필자도 개관 이듬해와 지난달 두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컨텍스트와 텍스트. 맥락과 내용을 하나의 건축물로 풀어낸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루마 아를은 아를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주변 자연까지 한 건축물에 담아냈다. 오래된 고도 위에 불쑥 선 건축물이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