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신춘문예-희곡] 모래섬
/정소정
새집으로 이사 온 미숙은 들뜬 마음으로 집을 꾸몄다. 직접 도배도 하고 장판도 깔고 가구나 소품도 만들었다. 그렇게 꾸며진 집을 치우는 그녀는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경비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비가 그녀의 집을 찾아오는 순간,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는 그녀의 집이 이사 온 이후로 이곳에 모래가 날린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며, 심지어 그들이 이곳 출신이 아니라 '거기' 출신이라는 소문마저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극구 부인한다. 거기 출신은 결코 이곳의 일원이 될 수 없기에. 거기엔 모래바람이 분다. 거기 사람들은 모래와 더불어 산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서 발견되는 모래는 이곳에서 펼쳐질 그녀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 경비는 그녀에게 회장님이 주신 선물인 청소기를 건넨다. 그것은 보통 청소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미세먼지부터 큰 덩어리까지 오물이란 오물은 모두 삼켜버리는 것이다. 굶주린 짐승처럼.
미숙의 남편 상훈은 오늘따라 몸이 좋지 않아 일찍 귀가한다. 경비는 그의 어깨에 묻은 모래를 발견한다. 경비가 돌아가고, 미숙은 상훈을 꾸짖는다. 상훈은 조심하기로 약속하고 밥을 먹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밥에서 돌이 씹힌다. 미숙은 그와 함께 밥을 먹지 않고 집을 치운다. 모래가 발견되지만, 청소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를 불편하게 한다.
경비가 다시 그들의 집을 찾는다. 지금 그들의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의 민원이 급증해서 급기야 찬반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미숙은 그 이야기에 절망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다. 상훈과 미숙은 경비에게 돈을 쥐여준다. 잘 좀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며. 경비는 못 이기는 척 돈을 받아들고 돌아간다. 그런데 나가던 경비가 다시 상훈의 옷에 묻은 모래를 발견한다. 경비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낸 뒤 떠나고, 남은 그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줄거리
미숙은 도대체 자꾸 어디서 모래가 나오는 건지 찾기 시작한다. 상훈이 먹던 국을 보니 그 속에도 모래가 가득하다. 상훈의 머리를 보니 두피에 모래가 가득하다. 그녀는 상훈의 옷을 벗겨 몸 전체를 구석구석 살피는데, 다시 경비가 온다. 상훈은 놀라서 옷가지를 챙겨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경비는 찬반투표 결과가 좋지 않음을 알려준다. 과반 이상이 그들의 입주를 반대했다고, 하지만 그가 그들의 진심을 그곳에서 밝히고, 회장이 그 의견을 백분 수용하여 주민을 설득했다고 말한다. 단, 이번에 이 집에 모래가 없고 깨끗하다는 그의 소견이 다시 덧붙여져야 한다고, 그것을 위해서 다시 조사하러 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설명하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다. 그는 배탈이 났다. 화장실을 쓰려고 하는 경비와 문을 열 수 없는 상훈. 경비는 결국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간다.
경비가 가고 난 뒤에 상훈은 화장실 문을 연다. 그의 온몸이 흙으로 뒤덮여 있다. 미숙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몸이 너무 안 좋다며, 제발 따뜻한 이불에 눕게 해달라며 나오려 한다. 미숙은 그를 필사적으로 막는데, 그 와중에 그의 손을 보게 된다. 그의 손바닥에 지문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얼굴의 흙을 털어본다. 얼굴도 형체가 뭉개지고 있다. 미숙은 기겁한다. 경비가 다시 오고, 상훈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경비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며 가구주가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난다고 하는데, 상훈은 화장실 문을 열지 않는다. 그는 경비가 묻는 말에 처음엔 대답하다가, 점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의 존재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발언을 한다. 미숙은 겁에 질려 경비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경비는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연다.
화장실 문이 열리자 그곳엔 아무도 없다. 상훈이 있던 자리에는 한 줌의 모래만 남아 있을 뿐이다. 모래에서 남편의 반지가 발견된다. 경비는 미숙에게 상훈 대신 사인을 할 것을 종용한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경비는 이제 마지막으로 모래를 치워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지 않으면 입주를 허가한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진다고. 게다가 발각되면 입주가 취소될 수 있다고. 미숙은 차마 모래를 치우지 못 한다. 경비는 회장이 선물한 청소기를 가져와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그 손을 잡아끌어 직접 모래를 치우게 한다. 청소기는 포효하며 모래를 집어삼킨다. 화장실 바닥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 마냥 깨끗해졌다. 그녀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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