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가을 저녁 빛
이윤학(1965~ )
비탈밭 고구마를 캐 한 짐
지게에 져오는 아버지 숨소리
멀거니 밀물 든 서해
바라보는 휘는 억새꽃
누진 솔가지 타는 냄새
낮은 산허리 감는 연기
-시집 〈곁에 머무는 느낌〉(2024) 중에서
풍경이 말을 한다. 정갈하게 가라앉은 가을 저녁의 풍경이 수묵화의 언어로 살아나 가슴에 스며든다. 가슴에 스며든 이미지는 한때의 추억, 한때의 영혼을 불러내 그리운 시기로 날아가게 한다. 풍경은 마음을 흔들어 우리로 하여금 몽상에 잠기게 만든다.
이미지의 포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황혼에 물든 가을 저녁, 비탈진 밭의 고구마, 지게 진 아버지의 구부러진 허리와 가쁜 숨소리, 그 옆 발치에 휜 억새꽃, 밀물로 둥글어진 서해안, 낮은 산허리를 감아 오르는 저녁연기.’ 이 모든 풍경은 부드럽고 따뜻했던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그것은 둥근 이미지를 통해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다. 이런 이미지에 잠기게 될 때 속된 감정들은 씻겨나간다. 존재를 울리는 풍경의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淨化)하여 가장 정겹고 순수한 한때로 돌아가게 한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