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진 붕괴·치밀한 작전 전략 부재가 4강 탈락 주요인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류중일호, 슈퍼라운드 진출 좌절

선발 투수 4명 줄줄이 조기 강판
ERA 2점대 일본·대만에 큰 열세

김도영·박성한·박영현·김서현 등
국제 경쟁력 입증은 ‘최대 성과’
2026 WBC 대표팀 더 나아져야

한국 선수들이 18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구장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호주와 경기에서 5-2로 승리하자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선수들이 18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구장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12 2024 B조 호주와 경기에서 5-2로 승리하자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가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선발 투수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 선수들은 (누가 나오든) 삼진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굉장히 부럽습니다."

류중일(61)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2024 일본과 조별리그 경기에서 3-6으로 패하고 남긴 말이다.

슈퍼라운드(4강) 진출을 1차 목표로 삼고 프리미어12에 출격한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18일 호주전을 치르기도 전에 탈락이 확정됐다.

류 감독의 말처럼, 한국 야구가 이번 대회에서 고전한 가장 큰 이유는 선발 투수진의 부진과 치밀한 전략의 부재이다.

가장 중요한 대만과 첫 경기 선발로 등판한 고영표(kt 위즈)는 2회에 홈런 두 방을 맞고 2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쿠바전 곽빈(두산 베어스·4이닝 무실점), 일본전 최승용(두산·1과 3분의 2이닝 2실점), 도미니카공화국전 임찬규(LG 트윈스·3이닝 3실점)가 모두 5회를 채우지 못했다. 문동주(한화 이글스), 손주영(LG),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등 선발 투수 3명이 부상으로 빠졌다고 해도, 나름대로 KBO리그를 대표한다는 투수들이 국제 대회에서 줄줄이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갔다는 사실은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마운드가 흔들린 한국과 달리 일본과 대만은 탄탄한 투수진을 앞세워 슈퍼라운드가 열리는 일본 도쿄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원래 좋은 투수가 즐비한 일본이야 그렇다고 쳐도, 대만마저 한국보다 탄탄한 마운드를 자랑했다는 점은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대만은 17일 현재 이번 대회에서 팀 평균자책점(ERA) 2.25를 찍어 오히려 일본(2.75)보다 더 잘 던졌다.

한국 투수진의 팀 평균자책점은 5.56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마따나 마운드의 힘이 뛰어난 팀이 순리대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셈이다.

KBO 전력강화위원회는 류현진(한화 이글스),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광현(SSG 랜더스) 등 이제껏 한국 야구를 이끌어 왔던 베테랑 선수를 배제하고 젊은 선수들로 올해 프리미어12 대표팀 마운드를 꾸렸다. 202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겨냥한 중장기 대책이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다음 WBC가 열리는 2026년 3월까지 짧은 기간에 마운드를 더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는 엄중한 숙제를 받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부상 선수들의 공백도 발목을 잡았다. 원태인과 구자욱(이상 삼성) 등이 빠지면서 투타에서 해결사 역할을 못해준 것이 뼈아팠다. 이처럼 부상 선수들이 많아지자 선수층은 더욱 얇아졌고, 이로 인해 일본과 대만 같이 주전들을 고루 기용하는 안정적인 경기 운용과 고비 때마다 치밀한 작전 전략을 세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한국의 프리미어12 3회 연속 4강 진출의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대만에서 얻은 소득도 있다.

2024년 KBO리그 최고 타자 김도영(KIA 타이거즈)은 프리미어12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타자'로 부상했다.

14일 쿠바와 경기에서는 올해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1위(1.88)를 차지한 리반 모이넬로를 두들겨 만루 홈런을 작렬했다.

18일 호주전에서 결승타와 쐐기 투런포로 4타점을 올린 김도영은 이날 전까지 13타수 4안타(타율 0.308), 2홈런, 6타점, 1도루를 기록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 홈런 3개 등 장타 5개를 때리며 팀 내 최다인 10타점을 쓸어담은 셈이다.

박성한(SSG 랜더스)은 공수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유격수 고민을 완전히 해결했다.

박성한은 대만전에는 결장했지만, 쿠바(4타수 2안타), 일본(4타수 2안타)을 상대로 멀티 히트를 쳤고, 도미니카공화국(3타수 1안타)과의 경기에서도 역전 결승 3루타를 작렬했다.

박영현(kt)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처럼 무시무시한 직구를 던지며 '국제 무대에서도 통하는 투수'로 인정받았고, 김서현(한화 이글스)도 빠른 볼을 구사해 국제 경쟁력을 확인받았다.

한편 1년 4개월 남은 2026 WBC와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반등의 계기를 찾으려면 성공적인 세대교체는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리는 불펜 계투로 한국 야구가 세계 중심부로 도약했던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한 선발 투수 육성 문제를 리그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마운드 운용을 잘 아는 지도자를 선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2026 WBC를 대비, 선수들의 몸 상태와 대표팀 합류 여부를 빠르게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최고의 선수단을 구성하려면 KBO 사무국이 사령탑 선임과 전력강화위원회 구성 등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