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서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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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현 성 심리학자

얼마 전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작품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커졌다. 노벨상을 받은 작품이니 다들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책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뉴스를 접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을 구해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가 강한 어조로 한강 작가의 책이 학교에 비치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 이유는 선정적인 내용이 절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굳이 그런 걸 읽게 해서 미성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기만 하면 어떤 내용을 읽든 혼란이 없을까?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시기별로 배우고 익힐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일 수도 있고, 인간의 도리 또는 인간의 본성과 특성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교육의 목적은 사건에 대해 사실을 인지하고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한 것들을 취사 선택해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학교에 책을 비치해 둔다고 모든 학생이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고 다 읽지도 않을 것이다.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으로 특정 책을 비치하지 않는다면 읽기를 원하는 사람의 선택권을 제거하는 꼴이 된다.

학생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선택권을 무조건적으로 통제하는 어른을 신뢰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사회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고, 온라인상의 폭력은 더욱 그렇다.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 요즘 큰 이슈가 되는 게 딥페이크 성범죄다. 이 범죄에서 특이한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연령이 낮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범죄인지 모르고 그저 장난으로 생각해서 쉽게 가해를 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접촉이 있어야 성폭력이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딥페이크는 비접촉 성폭력이다. 자신의 사진이 음란사진과 합성되어 유포될 수 있음을 모르고 게시했다가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유포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한강 작가의 책을 둘러싼 논란과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서로 염려되고 두려워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부정적인 일은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부모에게 자녀는 또래 집단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을 말할 수 없다. 언제든 즉각 도움을 줄 내 편이 부모라는 인식을 갖도록 양육해야 한다. 요즘의 아이들은 부모 세대에 비해 훨씬 유해한 환경 속에서 산다. 일탈의 기회 또한 다양해졌다. 아이들에게 튼튼한 안전망을 제공하려면 감추지 않는 투명한 대화가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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