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반구대암각화가 어디 울산만의 유산인가
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시장님은 2022년 당선인 시절 ‘문화재청이 전향적으로 안 나선다면 암각화 문제에서 발을 빼겠다. 암각화 보존 안 된다고 울산이 어떻게 되는 거 아니다’고 하셨는데 협상용으로 이해하면 되겠죠?”-더불어민주당 김성회 의원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지금까지 울산시가 문화재청에 구걸하듯 했습니다. (문화재청이) 여러 조건을 걸어서 ‘수위 낮춰라. 보존 계획 세워라’ 했는데… 문화재청에서 거꾸로 ‘우리가 등재할테니 너희들 물이 부족하다면 물을 확보해주겠다’ 이렇게 나와야 할 부분을 (중략) 업무 분장 확실히 하자는 겁니다.”-김두겸 울산시장
지난달 21일 울산시 국정감사에서 ‘자맥질 국보’ 반구대암각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7분간 이어진 문답에서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불협화음이 튀어나왔다. 물길에 차오르는 침적물 같은 두 기관의 오랜 앙금이 김 시장 언성에서 느껴졌다.
반구대암각화는 올해 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냈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직권’으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린 지 14년 만이다. 근데 이제 와 업무분장이라니. 무슨 말일까. 세계유산 등재는 굳이 약칭 세계유산법을 거론하지 않아도 국가유산청을 컨트롤타워로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구대암각화가 사연댐 상류에서 60년 가까이 물고문을 당하는 상황에서다. 반구대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계각층의 지난한 노력을 김 시장이 모를 리 없다.
김 시장의 본심은 암각화 보존과 직결된 물 문제 해결에 있다.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식수원인 사연댐 수위를 조절할 수문 설치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으나, 맑은 물(9만t) 부족에 대한 정부 해법은 턱 없이 모자라고 그것마저 지지부진하다. 당연히 울산 입장에선 국가유산청이 남의 집 제사보듯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국보 반구대암각화가 어디 울산만의 유산인가. 정부가 국가적 과제라는 인식을 갖고 한층 진일보한 해법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물 문제 사슬에 속한 지자체들이 더는 딴소리를 못 하도록. 암각화 보존과 맑은 물 공급은 순서의 문제도,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 둘 다 필요하다.
울산시 역시 국가유산청과 정부를 상대로 물 문제 해결을 강하게 지속해서 요구해야 한다. 자칫 울산시마저 방기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이는 암각화 보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피감기관) 업무보고에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다”는 김성회 의원 말은 민선 8기 들어 엑스트라로 전락한 반구대암각화의 곤궁한 처지를 일깨운다. 김 시장이 2022년 7월 취임 후 지금까지 한 40여 차례 기자회견 중 반구대암각화를 우대한 기억이 없다. 내년도 시정 향방을 가늠하는 울산시 예산안 발표에서도 이렇다 할 암각화 사업은 언급하지 않았다. 관심이 사그라든 탓인지 반구대암각화 방문객 수는 2022년 5만 4286명에서 지난해 4만 8223명, 올해는 3분기까지 4만 4850명으로 매년 줄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세계사적으로, 포경사적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김 시장은 박사학위 논문 ‘우리나라 고래산업의 현황과 과제-울산광역시의 사례를 중심으로(2013)’에서 반구대암각화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울산 장생포를 고래문화특구로 키운 김 시장의 정치 자산도 그 뿌리를 들여다보면 반구대암각화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반구대암각화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는 산업도시에서 나아가 문화도시 울산으로 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