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초고령 사회와 디지털 금융의 딜레마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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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경제부 블록체인팀장

디지털 고도화에 사활 건 금융기관
65세 이상 인구 23% 부산엔 딜레마
점포 폐쇄 속 고령층 접근성은 악화
격차 줄이는 포용적 환경 조성 필요

최근 지역 금융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디지털 금융과 날로 발전하는 핀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인터넷 뱅킹의 등장 이후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지역 금융기관들은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자 편의 측면에서 디지털화를 더욱 고도화하겠다는 그들의 계획을 들었다. 이에 자동적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를 넘겨 초고령 사회로 달려가는 부산의 현실이 머리를 스쳤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이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들 또한 어두운 표정으로 이 문제가 그들에게도 ‘딜레마’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대화 중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몇 년 전 지역화폐인 동백전이 출시됐을 때였다. 2019년 12월 30일에 첫 선을 보인 동백전 카드를 온오프라인에서 신청 가능했다. 기자는 자연스럽게 앱을 내려받아 실물 카드를 신청했고, 며칠 후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동백전의 10% 캐시백 혜택에 관심을 보이며 대신 신청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일이 꼬였다. 평소 부모님께 잘 해드리지 못한 아들이었기에 어머니를 위해 동백전 카드를 기꺼이 신청해 드리기로 했다.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여러 정보를 입력했지만, 결국 공인인증서의 장벽에 막혀 카드 신청은 실패로 끝났다. 답답함에 은행에 직접 가서 발급받으시라 말씀드렸던 그날의 상황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부산의 인구 구조를 생각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길거리에서 은행 점포가 하나둘씩 사라지며 노인들의 금융 서비스 이용이 더욱 불편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21년 9월 발표한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에 따르면 그해 6월 말 기준 국내은행 점포 수는 총 6326개로 전년 말 대비 79개 줄었다. 이는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의 확산과 점포 효율화의 결과다. 주목할 점은 인구가 많은 수도권과 주요 대도시가 전체 점포 감소의 77.2%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금융기관 점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898개로 2022년보다 29개가 줄었다.

디지털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많은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 것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금융 업무는 단순한 편의가 아닌, 노인의 생활 안정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앱을 통한 금융 업무는 계좌 이체, 잔액 조회, 대출 관리 등 필수 기능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밀번호, 인증서, 보안 절차 등 복잡한 과정도 거쳐야 해 노인들에게 심리적 부담과 혼란을 주는 것은 자명하다. 금융 서비스 접근의 어려움은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필요하다. 우선 점포 폐쇄에 앞서 사전 영향 평가의 내실화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4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가 펴낸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보면 점포의 문을 닫기 전에 고령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이를 점포 폐쇄 결정 과정에 반영해 이들의 불편을 사전에 예방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은행은 사전 의견 수렴 절차를 강화하고 평가 항목에서 고객 불편 요소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관은 또 점포 폐쇄 때 무인기기(ATM) 대신 계좌 개설 등 주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고기능 자동화 기기(STM) 등의 대체수단 도입 필요성도 강조했다.

점포 폐쇄가 불가피하면 폐쇄 사유와 대체 수단, 도움 받을 연락처를 충분히 제공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면서 사후 평가 절차를 통해 불편을 최소화하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 밖에도 고령층의 디지털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도 중요하다. 모바일·인터넷 뱅킹,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해 고령층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개발해 노인들의 사용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

수년 전 기자가 어머니의 동백전 카드 발급에 실패했던 경험은 단순히 자식의 도리를 다했는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고령층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참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포용적인 금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회적 포용과 안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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