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사라져가는 것의 '힙'함에 대하여
모바일국장
MZ세대 ‘로컬힙’ ‘텍스트힙’ 인기
소멸 위기 지역신문에 기회될까
국민 의문 대신한 본보 기자 질문
유튜브 조회수 100만 훌쩍 넘어
신뢰 구축·콘텐츠 질 제고와 함께
신기술 적용 플랫폼 전환 나서야
소설가 이문열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소멸해 가는 지방, 시나브로 전자 매체에 자리를 내어 준 종이책과 신문들. 중력 가속도에 의해 더 빨리 땅바닥에 가까워지는 이들에게도 날개가 있었던 것일까요?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로컬힙’, ‘텍스트힙’이 뜨고 있답니다.
‘힙(hip)’은 형용사로 쓰일 때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특히 이미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고 희소하고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기존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독립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뜻하는 ‘힙스터(hipster)’라는 단어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런 뜻에서 보면 ‘로컬힙’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촌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공간, 상품, 관광, 축제, 서비스 등의 지역 문화에서 힙함을 느낀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례로 대전 성심당, ‘촌캉스’ 등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관광기념품 팝업스토어인 ‘부산슈퍼’, 해변 ‘야장’ 경험을 선사하는 ‘밀락더마켓’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텍스트힙’은 책 읽는 행위가 힙하다는 뜻이랍니다. 긴 글 읽기 싫어하는 MZ세대는 문자보다는 영상, 긴 영상도 못 견뎌 10~30초 내외 숏폼 영상 위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난해 말 출판 러시에 들어간 쇼펜하우어 철학 서적부터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품까지 책 내용과 읽는 모습을 공유하는 SNS가 유행입니다. 각종 플랫폼을 활용한 독서모임도 성황입니다.
지난 8일 대구에서 지역신문법 제정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2024 지역신문 콘퍼런스’의 한 프로그램으로 청년들이 지역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혁신할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공모전이 열렸습니다. 이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기자는 청년들이 ‘로컬힙’과 ‘텍스트힙’을 말하는 것을 들으며, ‘힙’이라는 날갯짓이 지역과 활자매체의 교집합인 지역신문의 추락을 멈출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로컬힙’은 익히 알려진 지역 특산품의 한계를 넘어, MZ세대가 관심 가질 만한 내용과 형식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텍스트힙’은 배우와 가수 등 대중 스타의 주도에 한강 열풍이 더해져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콘텐츠의 철학적 울림이 있었기에 따르고 싶은 유행이 되었습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이 생중계된 날, 뜻밖에 〈부산일보〉가 전국적으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본보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회견 막바지에 올바른 사과의 요건을 말하며,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한 영상이 여러 방송사 등의 유튜브 계정을 아울러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것입니다. 댓글에는 ‘〈부산일보〉 독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류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부터,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까지 소상히 밝히는 것이 올바른 사과의 요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포괄적 사과는 하되, 구체적인 잘못은 언급하기 어렵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답답함을 느끼던 많은 국민이 회견 막바지, 이 부분을 정확히 짚은 질문에 환호한 것입니다.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이 궁금해할 것을 대신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입니다. 〈부산일보〉 기자의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연한 것을 고마워하고 응원하게 되는 특이한 세태입니다.
공모전에서 공용 지역뉴스 앱 개발, 블록체인 활용, AI(인공지능) 활용 카드뉴스 자동제작 솔루션 도입 등 번득이는 청년들의 아이디어 제안을 들으며 기자는 이런 방법론이 더 빛을 발하려면 시민의 신뢰 회복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콘퍼런스 당일 대상을 받은 〈부산일보〉의 ‘연결 프로젝트-고립의 꼭짓점 무연을 잇다’ 같은 기획이 좋은 예입니다.
중력을 거스를 방법은 폭발적인 에너지 외에는 사실 없습니다. 지역신문은 추락 속도를 최대한 늦추며 모바일 플랫폼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입니다. 시민의 지지와 응원을 받는 콘텐츠와 기자가 넘쳐난다면 이 추락 속도를 확연히 늦출 수 있습니다. MZ세대가 호응할 만한 소재와 형식을 더하면 지역신문을 읽는 행위가 멋진 취향의 대명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디자인과 기술을 더하고, 조직과 업무 공정을 바꿔나간다면 플랫폼 전환과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역신문이 ‘힙’을 넘어 주류 문화로 자리 잡는 그날을 감히 꿈꿔봅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