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체로 돈세탁·유명인 딥페이크까지…진화하는 도박사이트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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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총책·행위자 등 157명 적발
회원만 13만 명, 판돈 4조 원 굴려

도박 조직이 자금세탁처로 설립한 IT 회사가 건실한 기업처럼 위장해 소비자만족도 평가에서 수상하는 장면. 울산경찰청 제공 도박 조직이 자금세탁처로 설립한 IT 회사가 건실한 기업처럼 위장해 소비자만족도 평가에서 수상하는 장면. 울산경찰청 제공

돈세탁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IT업체를 통해 도박자금을 관리한 4조 원 규모 기업형 도박사이트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일상에 파고든 도박 범죄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울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도박공간개설 등 혐의로 정보기술 기업체 대표 A(40대) 씨 등 일당 13명을 구속하고 3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중 23명에게는 범죄단체조직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은 또 도박 사이트 이용자 중 신원이 확인된 107명을 도박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 등은 2019년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필리핀과 태국, 캄보디아 등 해외 3곳과 경기도 부천, 인천 청라 등에 사무실을 차리고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도박사이트에서는 한 달 평균 900억 원, 4년여 동안 4조 원 이상 도박자금이 오갔다.

도박사이트 규모가 조 단위로 커진 것은 자금 세탁 과정에서 기존 범죄의 틀을 벗어나 한층 고도화되고 치밀해진 탓이다.

A 씨 조직은 서울에 IT업체 3곳을 차린 뒤 도박자금 입·출금에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전자결재대행(PG) 시스템까지 만들어 돈세탁에 사용할 가상계좌 수만 개를 스스로 충당했다.

예컨대 도박꾼이 도박사이트에 가입하면 먼저 송금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공개 가상계좌로 도박자금을 송금한다. 그러면 이 돈은 토스나 카카오페이 같은 자체 PG사를 통해 한 IT업체 계좌로 보내진다. 그러면 다시 IT업체가 돈을 대포통장 여러 개로 분산 송금하고 환전과 동시에 도박꾼이 사이버머니를 지급받는 방식이다.

주로 대포통장에만 의존하는 여타 도박 범죄와 달리 ‘검은 돈’의 출처를 은폐하려고 대포통장은 기본이고 가상계좌까지 섞어 더욱 복잡한 단계의 세탁망을 구축한 것이다. 경찰은 “범죄에 사용된 가상계좌 대부분이 도박조직에서 설립한 PG사로 연결돼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이렇게 각종 첨단기술을 악용해 규모도 크고 교묘하게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방식은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도박조직 산하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의 경우 건실한 IT기업처럼 위장해 2023년 모 단체가 주관하는 소비자만족도평가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도박 조직은 주로 대포통장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 가상계좌 생성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거액의 도박 자금을 세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경찰청 제공 도박 조직은 주로 대포통장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애플리케이션 개발, 가상계좌 생성 등 첨단 기술을 동원해 거액의 도박 자금을 세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경찰청 제공

울산경찰청이 도박사이트 범죄조직으로부터 압수한 각종 명품시계. 경찰은 해당 조직의 부동산, 차량, 예금 등 100억 원 상당을 추징 보전했다. 울산경찰청 제공 울산경찰청이 도박사이트 범죄조직으로부터 압수한 각종 명품시계. 경찰은 해당 조직의 부동산, 차량, 예금 등 100억 원 상당을 추징 보전했다. 울산경찰청 제공

A 씨 조직은 한술 더 떠 딥페이크 기술로 트럼프, 푸틴 등 유명인을 가장한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송출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도박꾼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고전적 수법인 대량의 호객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도박사이트에서 확인된 회원은 지금까지 13만 명 정도로 주로 해외에서 중계되는 카지노나 불법 스포츠토토 등에 돈을 걸었다. 이 중에는 수십억 원 회삿돈을 빼돌려 구속된 은행원을 비롯, 미성년자도 10여 명 포함돼 있다. 한 성인 회원은 이 사이트에서만 약 30억 원을 도박으로 잃었다고 한다.

경찰은 해당 조직이 총 3000억 원 정도 부당이득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한다. 도박조직은 은행에서 현금 인출이 비교적 쉬운 상품권 업자로 위장해 범죄 수익금을 현금화하고 이 중 일부는 암호화폐 등으로 보관했다. 경찰은 조직 소유의 부동산, 스포츠카, 예금 등 100억 원 상당을 추징 보전했고, 나머지 자금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에 검거한 총책 외에 필리핀 인터폴과 이민국 공조를 통해 올해 7월 필리핀 현지에서 해외 총책을 검거해 현재 송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도박사이트는 수사 과정에서 폐쇄했으나 도박 조직의 잔당에 의해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바꿔가며 다시 운영하는 등 계속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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