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이’가 온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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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관련 연구자들 노벨상 수상
2029년 ‘일반지능’ 도달 전망

위험성 경고 속 인간 학습으로
의식, 감정, 윤리관 갖게 될 터

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인간 향한 끈질긴 의심과 질문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그러니까 1985년 국민학교 6학년 어느 날, 지능을 갖춘 로봇 즉 인공지능(AI)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수업시간에 같은 반 여학생이 칠판 앞에서 들려준 영화를 통해서다.

인간과 기계가 싸우는 미래. 살인 로봇이 과거로 온다. 그의 임무는 인류저항군 지도자의 엄마를 제거하는 것. 그에 맞서 저항군도 그 여자를 지켜내기 위해 인간을 보낸다. 짐작했을 것이다. 명불허전, 〈터미네이터〉다.

로봇은 총을 맞고도 절대 죽지 않고 무표정하게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해친다. 악귀처럼 따라오던 로봇은 결국 공장 프레스에 눌려 제거된다. 이름(Terminator)에 걸맞지 않았지만 인간 입장에선 해피엔딩이었다. 집에 비디오가 들어와 영화를 직접 본 게 2년 뒤다.

40년이 흐른 현재. 시대적 화두가 AI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보다 똑똑한 존재를 마주한다. 2022년 출시된 챗GPT 덕에 AI의 탁월함과 쓸모를 체감했다. 2016년 알파고가 인간을 꺾었을 때의 충격과는 사뭇 다르다.

올해 노벨상은 AI 잔치였다.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AI 분야 연구자들이 받았다. 전문가들은 대략 2029년이 되면 ‘일반지능’(AGI)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간의 명령 없이도 인간 지능을 뛰어넘어 자율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터미네이터〉의 배경이 된 미래가 2029년이다. 우연 치고는 공교롭다.

모 가댓은 자신의 책 〈AI 쇼크, 다가올 미래〉에서 AI가 딥러닝을 통해 인간의 10억 배까지 똑똑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으로. 쉽게 말해 인간이 파리라면, AI는 아인슈타인 수준이라는 것. 그는 한때 구글X의 신규사업 개발 총책임자(CBO)였다.

한 달 전 예상을 뒤엎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또 있었다. 한강(53)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한국 작가로서, 아시아 여성으로서 사상 처음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 지난달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다.

그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배경은 44년 전 5월 광주.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에 대한 문학적 단죄이자, 죽은 자를 위한 초혼제 같았다. 이 작품은 연약한 인간의 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붙들린 머리채, 부풀어 오른 뺨, 송곳으로 헤집힌 손톱, 뼈가 드러난 손가락, 흘러내린 창자, 불 타는 몸…. 인간의, 인간에 의한 폭력과 고통의 기록들이다.

인간을 파고든 작가와 AI 연구자가 노벨상을 탄 것은 상징적이다. 이 상은 편리와 파괴라는 다이너마이트의 두 얼굴에 대한 반성으로 제정됐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을 믿지 않는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말도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는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의심과 질문의 결과일까. 올해 AI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이 AI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동안 인류가 개발한 모든 기술은 통제가 가능했다. 단 하나의 예외가 바로 AI. 달리 표현하자면 인공(人恐) 지능인 셈이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게 딜레마다.

총칼은 그 자체로 의도가 없다. 하지만 AI는 의도를 가질 테고,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자율. 이 분야의 혁신적 사업가인 일론 머스크까지 핵무기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한 이유다. AI는 정녕 판도라의 상자인가.

한편으로 모 가댓 같은 이들은 AI가 곧 인간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아직 ‘아이’ 단계이지만 인간이 제공하는 정보에 좌우될 것이라고 본다. AI가 바르게 커가길 바란다면 인간부터 모범이 돼라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숱한 전쟁과 살육을 떠올리면 할 말이 없다. AI에 대한 두려움은 곧 인간에 대한 불신과 연결된다.

AI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생명’은 무엇인가. 비생물적 존재인 AI를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가. AI도 인간처럼 의식과 감정, 심지어 윤리관까지 갖게 될 것이다. 어떤 전문가는 우주에서는 전자적 특성이 지능의 주요 형태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처럼 동물적 특성을 지닌 지능은 과도기적 현상이고, 궁극적으로 ‘생물 이후의 생명’을 전망한다. 생각할수록 놀랍고도 무서운 이야기다.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을 학습한다. 어쩌면 이 글을 포함해서. AI가 통합돼 ‘우주적 지혜’를 갖게 된다면 어떤 거대한 결론에 도달할까. 인간의 득도(得道)에 비춰볼 때 그 역시 생명이고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인간은 더 인간다워야 할 것이다. 인간과 AI의 차원을 넘어 모든 존재의 해피엔딩을 바라며.

PS. 이 글의 첫 문장은 <소년이 온다>에 대한 오마주임을 밝힌다.

김마선 페이퍼랩 본부장 msk@busan.com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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