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새로운 진로를 찾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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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문학은 다른 예술에 비해서 열악한 대접
부산문학관 문제도 행정적 지원 아쉬움
경제성보다 정신의 역동성 측면 봤으면

지난 10월 30일, 부산일보 소강당에서 제27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 행사 가운데 하나인 요산 김정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요산 김정한 문학과 공공성’이라는 주제 아래 요산 정신의 현재성을 지금의 한국문학(문단)과 연결해 논구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공공성 확보와 저변 확대를 위한 나름의 방안과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따른 들뜬 분위기에도 그간의 한국 문단과 작가가 처한 현실을 짚어볼 때 절로 나오는 한숨과 걱정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심포지엄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자리를 메운 30명 남짓한 문인들 표정 역시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의 문학정신은 푯대처럼 부산의 작가들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진영’을 떠나서라도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선생의 일갈은 작가들에게 굳건하고 든든한 창작의 지렛대가 되어야 하며, 또한 그런 정신으로 창작에 임하는 작가들이 많은 줄 안다.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을 올해도 성황리에 치렀지만, 부산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부산시와 부산 문인 단체 사이의 해결할 길 묘연한 갈등을 생각하면 답답한 심정을 가누기 힘들다.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대해서는 이 지면에서 길게 말할 처지가 못 된다. 다만 20년 가까이 공전하고 있는 문학관 건립이 부산 문인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이에 걸맞고 합당한 예산 및 부지 확보를 위한 행정 노력으로 뒷받침되어야 마땅하지만, 최근 부산시가 보이고 있는 행보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문학관 건립을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선심 쓰듯 바라보는 시와 일선 공무원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문학관 건립 논의가 시작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난항을 겪는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최근 부산시청 후문 광장에서 진행된 부산지역 문학 단체의 부산문학관 건립 정상화 기자회견과 문학인들의 성난 목소리로부터 그 뜻을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건물’ 하나를 짓는 의미와 다른 특별한 문제의식이 들어 있다. 문학은 분명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의 일종이지만, 그 가치를 단지 경제적인 이익이나 수익 창출과는 별개의 영역에서 산출되는 ‘정신’의 역동성으로 바라보아야만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부산시가 웬일인지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는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를 떠올려 보자. 용역 결과 예산과 면적이 절반가량 줄어든 부산문학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지 면적과 예산을 높게 책정한 이 사업 과정의 투명성 여부와 ‘공공 가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부산시가 그렇게 용을 쓰면서 들여오려 하는 퐁피두센터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면 자연히 우리 형편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랑스 파리의 복합예술단지인 퐁피두센터 내에 있는 퐁피두 현대미술관은 현대 예술의 거장인 피카소, 샤갈, 마티스의 작품을 비롯한 현대미술 컬렉션 등 약 5만 3000점을 소장해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부르는 세계적인 명소다. 이 센터의 운영은 관장을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데, 위원회 산하 행정 책임, 각 국장, 연합 기관장, 정부에서 파견한 정책심의 대의원, 재정 후원 단체 등이 협의하여 퐁피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 말고도 20~30명의 자문위원회를 두어 퐁피두센터의 전체 경영, 전시 기획 진행, 시설 관리, 예산 수립과 심의 등 포괄적인 분야의 의사 결정에 관계하고 있다. 이렇게 자문위원회는 입법부, 행정부, 파리시, 민간위원 등 다양한 곳에서 선출된 위원회 멤버들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자유로운 의사 진행과 협의를 통해 미술관 운영에 참여한다. 형식적인 구성과 조직 체계만으로 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운영 및 경영 상태를 부러워하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을 숨길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현대 예술의 여건과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미술관 측의 의지와 노력이 세계적인 예술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부산시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 계획이 저런 행정적인 안목과 예술가에 대한 격조 높은 인식 및 대우를 감안한 것이었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부산문학관 건립 문제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텐데, 그래서 소극적인 시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의 주제는 ‘새로운 진로를 찾는 것이다’였다. 공공성 심포지엄의 분위기도 결국 작가의 창작 의지에 족쇄처럼 작용하는 배타주의적 공동체 의식에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다. 어느 때보다도 심란한 때, 또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할 ‘진로’를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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