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겨울의 길목에서 듣는 '콜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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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헨리 퍼셀. 위키미디어 제공 헨리 퍼셀. 위키미디어 제공

며칠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자, 이렇게 겨울이 시작되는구나’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겨울의 음악,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콜드송’(cold song)을 들어본다. 원래의 제목은 ‘너는 어떤 힘이냐’(what power are thou)이지만 ‘콜드송’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1691년 초연한 세미 오페라 ‘아서왕’ 3막에 나오는 아리아다. 이 곡은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중에 나오는 ‘내가 땅에 묻힐 때’,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음악은 잠시 동안’과 함께 퍼셀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로 꼽힌다.

“너는 대체 어떤 힘이냐? 저 땅 밑의 영원한 눈밭에서 날 억지로 일어서게 만드는가. 너는 보지 못하는가? 내 몸이 늙고 경직되어서 혹심한 추위를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거의 움직일 수 없으며, 숨쉬기조차 힘들다는 것을. 날, 나를 얼어붙게 해 다오. 나를 얼려서 다시 죽게 해 다오.”

색슨족 마법사가 영국을 얼음 나라로 만들었는데, 사랑의 신 큐피드가 나타나서 얼어붙은 대지를 풀어놓으려 한다. 이때 잠에서 깨어난 겨울의 신이 부르는 노래다. 꽁꽁 얼려 두었던 마음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포착해 놓았다.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로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역시 베이스 바리톤이 불러야 제맛이 난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 1악장을 연상시키는 오케스트라 반주도 멋있다. 그래서 영화나 광고의 배경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의 정부’에선 편곡 버전으로 흘러나왔고, 앤서니 홉킨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더 파더’에도 삽입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영국에는 천재적인 작곡가가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퍼셀은 36세라는 짧은 기간에 정말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디도와 아이네아스’, ‘아서왕’, ‘요정의 여왕’, ‘메리 여왕의 장송 음악’ 등 그야말로 ‘영국의 오르페우스’라고 불릴 만한 작품을 쏟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술. 술을 너무 좋아해서 밤늦게 취해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일설에 의하면 어느 날 이를 지겨워하던 부인이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술에 취해 밖에서 잠든 퍼셀은 추위에 몸을 상했고, 결국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게 329년 전인 1695년 11월 21일이었다.

퍼셀의 기일에 맞춰 부산문화회관에서 ‘아서왕’을 콘서트오페라 형식으로 공연할 예정이다. 장진규가 연출을 맡았으며, 이태영(아서왕), 박현진(큐피드), 이수정(비너스), 강태경(요정) 등이 출연한다. 이성훈이 지휘하는 드림문화오케스트라와 르보야즈 보칼레 앙상블이 연주와 합창을 맡았다. 퍼셀의 ‘콜드송’을 제대로 들어볼 기회가 될 것 같다.

퍼셀 '아서왕' 중 '겨울의 노래(콜드송)'      - 베이스바리톤 사무엘윤. 퍼셀 '아서왕' 중 '겨울의 노래(콜드송)'      - 베이스바리톤 사무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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