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출입 물류의 심장, 해기사의 위기
김종태 (사)한국해기사협회 회장
우리나라는 조선업 세계 1위, 해운업 세계 4위, 무역 교역량 세계 8위 국가다. 해상 물동량은 연간 13억t에 이른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으로는 휴전선으로 막힌 사실상 섬나라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선박으로 운송한다. 무역 의존도도 75% 수준으로, 선진국의 30%보다 월등히 높다.
이에 해운은 국가 경제의 대동맥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적인 지원 속에 해운산업을 성장시켰고 그리스,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4위의 해운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해운산업 육성으로 항만 물류업(운송, 보관), 조선업, 해운 관련 서비스업도 동반 성장했다.
해기사는 해운산업의 가장 큰 축인 선박을 운영한다. ‘물류의 심장’과도 같다. 이들은 해양대와 해사고 등 전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승선 근무와 면허 시험을 거쳐 선장, 기관장으로 진급하는 고급 인력이다.
오래전 해운회사 근무 때 선박 한 척의 재산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계산해 봤다. 그 결과 선박 가격 1000억 원과 선적된 화물 가격 5000억 원을 합한 총 6000억 원에 이르렀다. 세계 최대 규모 선박인 2만 4000TEU 컨테이너선의 가치는 무려 1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8~10명의 해기사는 이 막대한 재산을 안고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넘나든다. 해기사가 얼마나 중요한 국가적 자산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웃 일본은 한때 아시아 해운산업의 중심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인력 양성을 하지 못한 탓에 자국의 해기사 인력이 급격히 감소했다. 외항 선박 4000여 척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해운대국이지만, 해기사의 고령화와 젊은 인력 유입 부족으로 현재 단 2000명가량의 해기사만 보유하고 있다. 해운업을 제외한 선박 관리, 수리 등 연관 산업도 대부분 쇠퇴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해기사 양성은 인력 수급 문제를 넘어 해운 연관 산업의 지속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해운산업의 최대 수혜지 부산의 상황은 어떠한가. 해운업과 조선업의 발전은 부산항을 세계 7위 항만, 환적 화물 처리량 세계 2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 선박의 기부속, 선박 연료유, 윤활유, 생활용품 등의 물품 공급업, 선원 교대에 수반되는 여행업, 숙박업 등을 성장시켰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 골든타임의 끝자락에 있다. 현재 한국 해기사는 승선 인원이 8000명이다. 해운 연관 산업에도 약 1만 명이 포진해 있다. 혹자는 ‘해기사가 부족하면 외국 선원을 쓰면 될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외국 선원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면 해운업은 유지할 수 있을지언정 해운 연관 산업의 내리막길을 막기 어렵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하루빨리 해기사 인력 양성 체계를 마련하고, 관련 지원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선 육·해상 해기사 인력 통합관리 프로그램을 구축해 기존 인력의 유실을 막아야 한다. 둘째, 친환경 디지털 선박의 출현에 대비한 해기사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선박 관리·수리·보급 산업 우대 지원, 해사법원 유치 등 해운 연관 산업 활성화로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운산업의 중심지임을 선포해야 한다. 넷째, 기존 해기사 양성 기관을 강력히 지원해 우수한 인력을 계속 배출해야 한다. 가령 글로컬대학 지정, 해사고 졸업생들의 학사 취득 패스트트랙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선원 기념관 건립, 해기사 기념 거리 지정 등으로 해기사 가치를 제고할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단편적인 노력으로 해기사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사회적으로는 해기사를 향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국가적으로는 관련 제도를 과감히 손봐야 한다. 해기사들도 자기 직업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 경제의 주춧돌이 된 해기사가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