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막말과 민주주의
말 한마디에 엉망이 되는 코미디처럼
시정잡배도 정치적 막말 한 번이면
SNS·악성 팬덤에 눈도장 찍는 세상
말의 무게 공감하는 시대 다시 와야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는 말의 힘을 보여주는 웰메이드 코미디다. 평범한 주부가 쓴 각본이 라디오 드라마로 바뀌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막말 대소동이 일품이다.
원래 각본은 일본 어촌을 배경으로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그러나 여주인공을 맡은 퇴물 성우의 고집이 상황을 꼬이게 만든다. 주부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자신을 변호사로 소개하는 등 안하무인으로 연기한 것. 오로지 소리로만 연출하는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아무말 대잔치’다.
막말의 뒷수습은 상대 배우와 제작진의 몫이다. 줏대 없는 제작진이 여주인공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부화뇌동하면서 삽시간에 드라마 배경은 일본 어촌에서 미국 시카고로 바뀐다. 그리고 드라마는 산으로 간다. 여주인공의 막말에 상대라고 가만히 있었을까. 화가 난 남자 주인공은 ‘나는 어부가 아니라 미국인 파일럿 도날드 맥도날드’라고 질러버린다. 어촌에서 싹튼 작은 사랑의 드라마는 급기야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한 스펙터클 대서사시로 돌변한다.
이처럼 입을 떠난 순간 말은 하나의 현상이 된다. 코미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여야를 넘나드는 막말 대소동이 벌어졌다. 발단은 지난달 27일 뉴욕 공화당 유세에서 불거진 한 코미디언의 발언. 찬조 연설자로 유세장에 나선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비하했다. 미국 내 푸에르토리코 출신은 6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심전심 히스패닉 유권자까지 덩달아 발끈하면서 미 대선 막판 최대 사건으로 비화했다.
상승세가 꺾였던 민주당은 공화당 지지자의 막말 한 마디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카멀라 해리스 캠프는 이 발언 영상을 광고로 만들고, 경합주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권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대량 발송했다.
그러나 막말이 가져다준 호재는 잠시였다. 다음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눈치 없는 한 마디가 막말에 막말을 보탰다. 취재진이 전날 쓰레기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내가 보기에 유일한 쓰레기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이라고 답하고야 말았다. 말 한마디가 전세계가 주목하는 미 대선 판도를 흔든 꼴이 됐다.
추억의 미국 프로레슬링은 40~50대 남성이라면 누구나 익숙하다. 그 무대에서 ‘진짜 부동산 재벌이 맞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이크 하나 들고 종횡무진하던 게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벼랑 끝에서 호재를 만난 그는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고 쓰레기 수거차까지 모는 퍼포먼스를 하며 해리스 부통령을 몰아붙였다.
이런 포복절도할 만한 시추에이션이 강 건너 불구경이었으면 좋으련만. 비슷한 시기 한국의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X발 사람 죽이네, 죽여’가 나오고 ‘법관 주제에’가 터져나왔다. 불구경하다 돌아보니 우리 집은 전소 단계가 아닌가 말이다.
잘못 뱉은 말 한마디에 많은 이들이 명성과 기회를 잃고, 다들 그것을 당연히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무거움에 다들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극단의 매체인 SNS가 덩치를 키우면서 말은 그 가치가 달라졌다. 배설하듯 내지르는 저열한 ‘사이다 발언’에만 열광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독버섯 같은 정치 팬덤이 SNS를 장악한 탓이 크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이라면 뭐든 옳고, 반대하는 진영이라면 뭐든 혐오스럽다는 유아적인 행태는 정제된 언어를 거부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말의 환경이 열악해지니 이를 나무라기는커녕 악용하는 잡배까지 날뛰는 중이다. ‘공공장소에서 할 소리인가?’ 싶을 정도의 막말을 내뱉어도 사회적으로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치 팬덤의 눈에 드는 순간 한순간에 말 주인은 ‘정치 셀럽’이 된다. 경륜과 인품에 대한 검증은 건너뛰고 악다구니 한 번이면 정치권 중심으로 가는 추잡한 지름길이 열리는 것이다. 충성심으로 포장된 막말을 내뱉는 시정잡배와 이를 SNS로 확대 재생산하는 악성 정치 팬덤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도 이번 대선 이후에는 ‘두 개의 미국’을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의회 의사당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정치 지형이 양극화된 미국이다. 그 저변에는 막말과 정치 팬덤이 있다. 민주주의를 한발 앞서 받아들인 미국에서마저 이럴진대 한국도 민주주의가 효용 한계에 도달했다는 푸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말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말 속에 힘이 있는 까닭이다. 말이 빚어낸 현상과 그 결과는 오롯이 그 주인의 몫이다. 정제되지 않고 뱉어내는 공인의 막말에는 가혹할 정도의 사회적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 정치인의 막말에 관대했던 시절은 동서고금 어디에도 없었다. 권상국 정치부 차장 ksk@busan.com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