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토균형발전과 권한 이양
강병중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을 맞아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지방시대 정부”라고 다시 강조하면서 “지역 균형발전과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라고 밝혔다. 또 과거처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분배해 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면서 권한과 책임의 무게 중심을 더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옮기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이날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성과를 거론하면서 대구·경북 행정 통합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을 첫 번째로 언급했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단순히 지방자치의 날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부가 대구·경북 행정 통합에 권한 및 재정 이양을 약속하고, 범정부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하겠다며 의지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구·경북 행정 통합 논의가 본격화하자 그동안 여러 차례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밝혀왔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언론, 학자들이 참여하는 지방분권전국회의도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투표를 해서라도 대한민국 헌법을 개정해서 주거·교육·일자리·보건의료 등이 모두 몰려있는 수도권 집중을 타파하고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이루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 균형발전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중앙집권적 정부 정책과 수도권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균형발전을 끊임없이 외쳐온 여야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함께 나서 수도권의 기형적 발전과 비수도권의 지방 소멸을 막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수도권 초집중과 지방 소멸의 국가적 위기 상황이 그만큼 엄중해지고 절박해졌다는 방증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도권 초집중은 젊은이들이 대학과 일자리를 찾아 대거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만들고, 세계 최하위권의 출생률과 같은 망국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부울경 3개 시도를 비롯한 비수도권은 공통으로 청년 유출 및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잠재 성장력이 약화하고, 상당수 기초지자체가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가운데서 부울경은 초광역 경제동맹을 결성했고, 부산·경남은 행정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부산·경남 행정 통합이든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든 상생과 협력을 통해 독자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지만, 중앙정부로부터 현재와는 다른 권한과 재정을 받아야만 빠른 속도로 진척돼 효과를 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방분권을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만약 적극적인 권한과 재정 지원이 있었다면 특별지방자치단체로 야심 차게 출범했던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도 중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토 균형발전은 역대 정부가 수십 년간 앞에 내걸었던 국정 목표였으나, 제대로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산이 앞장서서 수도권 규제를 위한 법을 만들어 놓아도 알게 모르게 규제를 완화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비수도권의 지역 발전 사업은 이런저런 이유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늦춰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무산되는 발전 사업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차별 대우의 결과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로 나타났다.
현 정부가 과감한 권한 이양과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지방시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갑고, 또 큰 기대를 하게 된다. 부산·경남·울산이 하나로 힘을 합쳐 경제공동체로 만들고, 나아가 행정 통합을 이루어 수도권에 대응하는 중심축이 돼야 한다는 것은 지역의 오랜 염원이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땀과 열정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 있다. 부산·경남이 면밀한 준비와 과감한 추진력으로 권한과 재정을 대거 이양받아 하나가 되고, 울산도 동참해서 지방 시대와 균형 발전을 선도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