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다시 오지 않을 순간
서정아 소설가
지루한 반복으로 인식할 때
삶은 지리멸렬해진다
유사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도
그 안에서 미세한 차이 찾아
다양성 누리며 도약 선택해야
오르골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태엽을 감으면 아침 공기에 어울리는 청량하고 맑은소리가 흘러나온다. 연주되는 선율은 ‘일상으로의 초대’(신해철)의 한 부분이다.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가사 없는 멜로디이지만 어떤 때는 꼭 가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딱 저 구절만큼의 선율이 반복되는데, 뒤로 갈수록 음악은 조금씩 느려지고, 오르골의 청량하고 맑은소리는 그렇게 지연되는 시간만큼 점차 아련하게 멀어지다가 마침내 멈춘다. 멈추는 시점이 매번 바뀌기에, 어디에서 멈추느냐에 따라 그것을 듣는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 한 구절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춰질 때는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이 마음속에 어룽거린다. 그렇게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오르골 선율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 삶에서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들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개봉했던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한 남자의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동일해 보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매일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이다. 그의 일상은 얼핏 보면 단조롭고 지루할 정도로 똑같아 보인다. 매일 아침 캔커피를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해 정성을 들여 공공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다. 필름 카메라로 나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단골 술집에서 반주를 즐기며 목욕탕에 가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좋아하는 소설을 읽다 잠든다. 다이내믹한 변화나 눈에 띄는 발전 없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 같은 그의 생활이 스크린에서 한참 동안 펼쳐진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완전히 똑같은 하루는 없다는 것을.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히라야마의 일상에는 늘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의 모습이 시시각각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은 동일성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 세상에 완전하게 똑같은 것은 없으며, 우리가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 요소들을 제거해 버린 추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령 어제도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왔으며 내일도 비가 왔다고 치자. 그 사흘간의 비를 그저 똑같은 ‘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제의 비는 소나기이고 오늘의 비는 보슬비이며 내일의 비는 가랑비라는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그 각각의 단어로도 그날 내린 비의 다양한 모습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다. 순간순간 내리는 비의 모습과 양과 질감은 다를 테니까. 그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추상적으로 한데 뭉쳐 ‘사흘 내내 비가 온다’며 지루한 반복으로만 인식할 때 삶은 지리멸렬해진다. 유사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 동일성만을 볼 것인지, 그 안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찾아 그 다양성을 누리며 도약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그 안에서의 작은 차이들을 세심하게 느끼고 기쁨의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정성과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어떤 경지에 도달해 가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고 싶다.
어느새 11월이다. 매년 오는 11월이지만 다시 오지 않을 11월이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오늘만의 고유함이 있는 단 한 번뿐인 아침이다. 나에게 유일한 이 순간이 너무도 아름답고 아쉬워서, 기쁘게 눈물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