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주 6일 근무냐, 주 4.5일 근무냐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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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노동 시간 배분, 다시 화두 부상
대기업, 지자체 등 근무 형태도 양극화
최적의 균형점 놓고 논쟁 가열 가능성도

우리나라에 주 5일 근무가 도입된 때가 2002년 4월.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당시 정부 부처에 시범 도입된 이 제도는 이후 2004년부터 1000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고 2011년 7월부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도 적용됐다. 주 5일제 시행은 여가 확대 등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주 5일제에 최근 균열이 생기고 있다. 주요 대기업이 임원들을 대상으로 주 6일제 근무를 확대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반대로 주 4.5일제 근무가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다. 사회의 각 영역에 따라 주간 근무 형태도 분화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내 일부 대기업 임원진을 중심으로 주 6일 근무가 늘어나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 중에는 주 4.5일 근무를 도입하는 곳도 있어 주간 근무 형태도 다양화하는 모양새다.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출근하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최근 국내 일부 대기업 임원진을 중심으로 주 6일 근무가 늘어나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 중에는 주 4.5일 근무를 도입하는 곳도 있어 주간 근무 형태도 다양화하는 모양새다.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출근하는 시민들 모습. 연합뉴스

■ 대기업은 주 6일, 지자체는 주 4.5일

올해 4월부터 삼성그룹 임원진은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를 선택해 출근을 시작했다. 전반적인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회사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임원들이 근무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그룹에서 따로 지침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마 회사 분위기상 ‘계약직’인 임원들이 주말 근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조직과 실적 관리가 엄격하기로 이름난 삼성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여겼던 주 6일 근무가 최근 들면서 다른 대기업으로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SK이노베이션은 이달부터 임원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커넥팅 데이’를 시작한다. SK이노베이션 임원 50여 명과 SK에너지·SK지오센트릭·SK엔무브 등 계열사 임원들이 토요일 오전 회사로 출근해 전문가 강연이나 워크숍을 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통상적인 주 6일 출근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지만 어쨌든 토요일 출근 자체가 회사 임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조직 내부의 기강이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회사 차원의 조치로 여겨질 수 있다. 게다가 국내 굴지의 기업이 비록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지만 주 6일 근무 확산은 다른 기업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의 주 6일 근무와 정반대의 기류도 늘고 있다. 바로 주 4.5일 근무인데, 특히 관공서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강원도 정선군이 올해 9월부터 4개월간 주 4.5일 근무를 처음 시작한 이후 경기도가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강력하게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공청회 등 관련 절차를 밟는 중으로 내년 3월 시범 추진 일정까지 밝힌 상태다. 이 외에도 금요일 오후 퇴근, 유아 자녀를 둔 직원들의 주 4일 출근 등 각 지역 사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4.5일 근무 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주간 근무 형태의 다양화로 일과 여가 시간의 배분을 둘러싼 문제는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경남 양산시 황산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부산일보DB 주간 근무 형태의 다양화로 일과 여가 시간의 배분을 둘러싼 문제는 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경남 양산시 황산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부산일보DB

■ 주간 근무 형태도 양극화?

대기업 임원들의 주 6일 근무는 아무래도 직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임원들의 주말 업무를 위해서는 실무 담당자들의 보좌·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미 직원들의 주말 근무가 불가피해진 곳도 있다고 한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는 수긍이 간다고 해도 20년 만의 주말 근무가 아무래도 우리나라 직장 문화를 더 경직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과 여가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과도 어긋난다.

특히 지자체를 중심으로 주 4.5일 근무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일반 관공서의 주간 근무 형태가 확연히 갈라지는 현상을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주목된다. 이미 주 5일 근무가 대세로 굳어진 상황에서 여건 변화를 이유로 주 4.5일 근무와 6일 근무가 양립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도 논쟁거리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놓고 노동계와 재계, 국민들 사이에 본격적인 논쟁이 일 가능성도 높다.

예나 지금이나 휴식과 노동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인류가 존재한 이래 늘 최고의 고민거리였다. ‘아포리아’, 어쩌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일 수도 있다. 다만 둘 중 어느 것도 희생할 수 없는 만큼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 맴도는 일이 인류의 몫인 듯싶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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