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특별건축구역이 던진 물음, 마천루와 빈집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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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사회부장

남천동 ‘99층 건물’에 이목 집중
삼익비치, 특별건축구역 지정 계기

자본 몰리는 해안 중심 선정은 한계
지역 균형·열린 아이디어 담아내야

빈집 대안 ‘영도 콜렉티브 힐스’ 호평
다양한 평가·의견 담은 새 방향 필요

지영이가 ‘남천동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에 반 전체에 난리가 났다. 수정동 산복도로 아래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거나 좌천동 조부모 집에 얹혀 자라던 아이들에겐 12층 아파트에 살게 된 지영이가 부러웠을 테다. 지영이는 집에서 고물상을 해 형편이 괜찮던 친구보다 더 부잣집 아이처럼 보였다. 친구 몇몇은 지영이 새 집까지 다녀와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아파트엔 유나백화점 개점 때 처음 타 본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40여 년 전 국민학교 같은 반 친구가 삼익비치타운으로 이사 간 옛 기억을 떠올린 건 ‘부산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 대상지 발표 때문이다. 글로벌 허브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시가 도시 이미지를 높일 방법의 하나로 꺼내든 카드가 특별건축구역 제도다. 민간 사업자가 세계적 건축가와 손잡고 만든 설계 기획안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사업 골자다. 최근 대상지 3곳이 선정된 직후, 세간의 관심은 삼익비치타운에 세운다는 최고 99층짜리 마천루에 쏠렸다. 층수, 연면적 등과 함께 프랑스의 건축 거장이 참여한 설계 디자인 정도만 공개됐는데도 연일 화제다. 셈 빠른 사람들은 부동산 시세 분석에 한창이다. 분양가가 6000만~7000만 원에 이를 거란다. 수억 원대 분담금을 조합원들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걱정인지 질투인지 모를 얘기도 오간다.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뛸 것이라는 부러움도 겹친다. 인근 부동산에 급매물이 싹 들어갔다는 보도도 나왔다.

2008년 도입된 특별건축구역은 전국에 수십 곳이 지정돼 있으나 실제 사업 과정에서 지자체와 사업자 간 다툼, 사업 주체 내부 갈등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도 수년 전 특별건축구역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활성화를 시도하고 있다. 부산시도 이번 3곳을 더해 7곳까지 늘린 특별건축구역 사업을 더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배를 마신 사업자들이 벌써 차기 공모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99층 건물에 집중된 관심과는 별개로 이번 특별건축구역 공모는 현실적인 숙제들을 남겼다. ‘세계적 건축가가 참여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방식부터 논란이 됐다. 부산에 새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이해하지만 건축계에서는 ‘거장 권위와 명성에 기대는 행태’ ‘국내 건축가 소외’ ‘지역 정체성 실종’ 등 비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다양한 사업자 참여에도 허들이 됐다. 건축비가 치솟은 상황에 거액을 주고 거장을 초빙하는 일은 또 다른 비용 상승 요인이다. 창의적이고 지역 특색을 충분히 담은 건축의 등장을 막는, 또 하나의 ‘그림자 규제’다. 한 공모 도전자는 40억~50억 원의 설계비를 부담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민간 사업자 사업성만 높여줬다는 쓴소리도 있다. 시가 제시한 인센티브는 건축물 높이 제한 적용 배제, 최대용적률 1.2배 이내 적용 등으로 사업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것들이었다. 최종 경쟁에 오른 후보지 6곳 중 4곳이 40층 이상 초고층 건물 설계안을 제시했다.

이번 공모에는 해운대구와 수영구 등 해안을 개발하려는 사업자들이 주를 이뤘다. 소위 ‘돈 되는 곳’들이다. 최종 경쟁 대열에 든 후보지에 서부산이나 중부산 등 부산 내륙 지역에서 진행되는 사업은 없었다. 공모가 또 하나의 동서 격차의 계기로 작동한 셈이다. 부산 원도심이나 내륙 지역에선 “부산 랜드마크는 해안가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부동산업계에선 ‘삼익비치타운이 메인이고 나머지는 구색 맞추기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선정 기준을 더 명확히 하고 세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인다. 이번 공모에도 공공성을 평가하는 별도 체크리스트가 있었고, 심사위원들도 전문가적 식견을 발휘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 건축 시 예상되는 문제나 부작용이 충분히 검토됐는지는 의문이 든다. 몇몇 건설사 관계자는 건축비, 시공 어려움 등으로 99층 건물이 제대로 지어질 수 있을지에 고개를 내저었다.

빈집 문제에 대한 고민이 오간 일은 다행스럽다. 엠브이알디브이(MVRDV)의 위니 마스가 설계한 관광숙박시설 ‘영도 콜렉티브 힐스’다. 수직적 고층건물을 포기하는 대신 1~3층짜리 블록 형태의 수평적 건물들을 지어 작은 마을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그것도 영도의 경사지 3119㎡ 땅에 말이다. 심사위원들도 빈집 문제에 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부산시가 첫 시도의 긍정적 결과는 살리되, 더 명확한 특별건축구역 사업 방향을 찾길 기대한다. 부산 전역을 더 골고루 나누고, 창의적이면서도 지역 특색을 살린 아이디어를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랜드마크 몇 개가 더 생겨 관광객은 찾아오더라도 지금대로라면 남천동 아파트로 이사 가는 ‘수정동 지영이’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현재 머무는 곳을 바꾸려는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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