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러시아 최고 시인' 푸시킨 탄생 225주년을 맞아
옥사나 두드니크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
올해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1837)이 탄생한 지 225주년이다. 그는 시인, 극작가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그의 작품은 무려 2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그의 소설 ‘대위의 딸’과 ‘벨킨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주변에 러시아 작가 연합이 건립한 푸시킨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교류의 깊은 상징성을 보여준다. 푸시킨 탄생 225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
러시아에서도 푸시킨은 단순한 작가를 넘어 문화 그 자체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동화, 가사, 산문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였고, 그 속에 근대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근대 문학의 창시자로 평가받으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
푸시킨은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공부하며 언어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그는 아버지의 도서관에 있는 책을 탐독하며 문학적 소양을 쌓았고, 11살에는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기억할 정도로 비범했다. 12살이 되던 해, 그는 황제 마을 리세움에 입학하여 6년간 교육을 받았고, 졸업 후에는 외교부에 입사했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문학과 창작에 있었다.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작가 사회에서 인기를 얻으며 창의성을 발휘하였고, 1819년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자유주의적 이념에 가까운 문학 단체인 ‘녹색 램프’에 가입하는 정치적 경향을 보였다. 차르 당국은 이러한 그의 행보를 용납하지 않았다. 1823년 그가 친구에게 보낸 불온 편지가 검열당해 직장을 잃고 미하일로프스코예에 있는 가족 영지로 추방당했다. 추방 기간에도 100여 편을 창작하는 열정을 보였고, 1826년이 되어서야 수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1829년, 푸시킨은 운명같이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만나게 된다. 모스크바의 최고 미녀로 명성이 자자하던 그녀는 시인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얼마 후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어린 나이를 이유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결혼을 허락받지 못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년의 기다림 끝에 결국 그녀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다. 1830년 여름, 볼디노에 방문한 그는 콜레라로 인해 3개월간 발이 묶이게 되었는데, 천재 작가는 이 기간에 ‘벨킨 이야기’ ‘작은 비극’ 등 32편의 시를 썼고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했다. 이 기간을 ‘볼디노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같은 해 12월,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했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과 아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는 죽음을 맞았다. 1837년 2월 8일, 나탈리야의 명예를 훼손한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이틀 후 세상과 이별했다. 그의 죽음으로 러시아는 큰 슬픔에 잠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 절반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위대한 시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할 정도였다.
흥미롭고 다사다난했던 그의 삶은 작품에 잘 녹아 있다. 운문, 소설, 시, 동화, 산문, 희곡 등에서 사랑, 우정, 자연, 애국심, 자유, 철학, 역사 등 주제를 다뤘다. 가을을 맞아 한국 독자들도 이 독특한 인물의 작품에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