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외발자전거 같은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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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찾기 어렵게 되자 부산시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가 연내 출범을 앞두고 있고 특구 지정기간도 연장되면서 한숨을 돌린 상태다.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특구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부산이 블록체인 허브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에 모든 관심과 비판이 부산시를 향했던 게 사실이고 이는 불가피했다.

그런데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 정부 정책도 어젠다 제시만으로 실현되진 않는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지방자치 시대를 맞은 지방정부의 정책이라면 해당 지역의 민간 분야에서도 손을 맞춰줘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개발도상국 시절의 낙후된 경제 체제하에서는 민간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최소화되어야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정부의 힘만으로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모든 정책이 경제나 금융과 밀접히 연계돼 있는 현실에서는 금융기관의 역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지정 5년여

부산시 향한 관심과 비판 불가피해

상당수 정책서 금융기관 역할 중요

지역 금융, 커스터디 분야 투자 등 없어

이런 소극적인 태도 도저히 납득 안 돼

시 비전은 ‘파트너’ 찾는 데서 시작해야

이러한 관점에서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산업 분야에서 국내 은행들의 활동과 부산 지역 은행의 모습을 비교하면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시중은행들 가운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은 일찌감치 커스터디(custody, 수탁) 분야에 지분 투자 형식으로 진출했고, 하나은행을 필두로 한 하나금융그룹은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커스터디 분야에 지분 투자를 했다. 신한은행, NH농협은행과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은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독점적으로 실명계좌를 제공해 신규 고객 유치 등 신사업 진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는 지방은행들도 마찬가지이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지방은행인 전북은행도 가상자산 거래소 한 곳에 실명계좌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고, 대구·경북 지역 대표 은행인 아이엠뱅크(구 대구은행)도 커스터디 분야에 지분 투자를 했다. 그러나 BNK금융그룹이 이들 은행과 같은 투자를 진행했다거나 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부산시가 그동안 공들여 추진해 온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에도 BNK금융그룹의 지분 투자나 공동 사업은 없다.

시중은행, 인터넷은행 및 지방은행들이 디지털자산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하거나 사업상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이나 어젠다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는 블록체인 산업 분야에서 금융기업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사업은 디지털자산에 있어서 은행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프라 서비스라 할 수 있는데, 유럽과 북미에서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사업 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디지털자산을 새로운 자산 유형으로 보고, 실물자산 기반의 토큰인 RWA(실물 연계 자산) 또는 토큰증권 분야에도 엄청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BNK금융그룹은 부산시의 시 금고 역할을 할 만큼 시 행정에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시중은행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부산시가 중요 정책 분야로 보고 있는 블록체인 내지 디지털자산 분야에서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추측하건대,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먼저 부산시는 블록체인 정책과 관련해 시 내에서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알다 보면 이미 형성된 선입견에 따라 설득이 더 어려운 경우가 있다. 어떤 기업의 대표가 아무리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안하더라도 내부 직원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그게 되겠어”라는 식의 의심부터 갖게 된다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다른 하나는 국내 여타의 은행들과 달리 BNK금융그룹은 애당초 블록체인이나 디지털자산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여러 담당자를 만나면서 느낀 바도 이와 유사하다. 고금리 상황에서 수년간 조 단위 수익을 올려온 BNK금융그룹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에 따른 방향성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꼭 해야 하나요?”, “비트코인을 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 “자료를 제공해 주면 공부해 보겠다” 등의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두 번째 이유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필자는 앞선 칼럼에서 블록체인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 펀드 조성과 같은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부산시의 블록체인 비전은 오히려 그 비전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적합한 금융 파트너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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