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희망 고문’ 언제까지…
최세헌 경제부장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산은 이전
북항재개발 추진·복합리조트 건립
에어부산 분리 매각·가덕신공항 등
올해 부산 최대 현안사업 지지부진
나태·무능한 부산 정치권·부산시
현안 돌파할 역량 부족… 각성해야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해 1월 1일로 돌아가 보자.
〈부산일보〉 1월 1일 자 1면 톱 기사 제목은 ‘솟아오른 청룡의 해, 부산이 다시 뛴다’이다. 이어 이날 사설 제목은 ‘새해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비상 견인하자’이다. 제목만 봐도 내용에 대해 감이 오겠지만, 2023년 말 엑스포 유치 실패를 딛고 새해엔 글로벌 허브도시로 새롭게 도약하자는 거다. 1월 2일 자 1면 톱 기사 제목은 ‘지속가능 도시 향한 부산 대개조 서막 올랐다’이다. 신년 기획 시리즈 주제를 ‘리뉴얼 부산’으로 택했다. 부산을 리뉴얼하기 위해 분야별 최대 현안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등을 집중 해부했다.
기사의 내용 중 핵심적인 것만 추려보면 저출생, 청년 유출, 고령화 등을 유발하는 부산의 낡은 시스템을 올해는 싹 바꾸는 시작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의 최대 현안인 글로벌 허브도시의 초석을 다지며 북항재개발 조속 추진, 가덕신공항 적기 개항, 산업은행 부산 이전, 에어부산 분리 매각, 복합리조트 건립 등에 대해서도 총망라돼 있다.
10개월 전에 나온, 오래된 기사를 굳이 이토록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년 초에도, 혹은 내후년 초에도 신년 기사로 읽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독자 입장에서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기사도 새롭게 다가오고, 또 그래서 필자를 비롯한 기자들도 비슷한 내용들을 쓰기도 하고, 신문도 팔리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몇 년째 되풀이되는 주제를 앵무새같이 말해야 하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전 몇 해 전부터, 그리고 올해 들어 10개월 동안 ‘감감무소식’ ‘불발’ ‘차질’ 등의 부정적인 제목인 달렸던 기사들의 대부분은 부산의 최대 현안이라고 불리는 것들이었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그나마 부산 시민의 동력을 모을 거라 기대했던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금방이라도 입법화가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0개월 동안, 130여만 명의 시민 서명을 받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국회 통과는 미지수다. ‘민주당의 반대’라는 공통점에서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도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산항 북항재개발은 대역사인 만큼 곳곳이 암초다. 북항재개발 2단계 사업은 추가 사업비 문제로 참여 기관들이 사업 타당성 검토에 다시 나서면서 사업계획 수립 용역이 중단된 채 시간만 끌고 있다. 벌써 마무리돼야 했을 북항재개발 1단계의 화룡점정인 랜드마크 부지는 결국 최근 원점 재검토로 재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랜드마크 부지를 비롯한 북항재개발 일대에 복합리조트를 건립해야 한다는 안도 답보 상태다. 부산 상공계에서는 일본과 인천 등의 사례를 들며 외국자본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복합리조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부산시는 랜드마크 부지에 대한 별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복합리조트 건립에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에어부산 분리 매각 문제도 하세월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자인 산업은행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실제 소유주인 대한항공은 부산시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통령실 등 정부에서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부산 거점 항공사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처럼 에어부산 분리 매각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부산시는 거점 항공사 지원 조례를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된 예산조차 책정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가덕신공항 건설은 다른 사안에 비해 나은 편이다. 부지 조성공사 입찰이 4차례나 유찰됐지만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맺고 내년에는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물론 유찰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며 조기 개항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같이 부산의 현안들이 지지부진한 것은 전적으로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의 책임이다. 시민들은 모든 힘을 몰아주고 있지만 이를 결집해서, 맨 앞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들이 제 할 일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둘러싼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지역 차원에서 어쩌겠느냐는 항변도 다소 공허하다. 틈새를 노려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력이고 정무 능력이다.
양비론은 지양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부산의 현안을 둘러싸고 국민의힘은 나태하고 무능하다. 민주당은 우유부단하고 무심하다. 부산시는 이를 돌파할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올해 남은 2개월도 무의미하다. 부산이 나아질 것이라는 끝없는 ‘희망 고문’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어김없을 듯하다.
부산 정치권과 시의 각성이 절실하다. 올해 내가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나라도 했나, 둘러보라. 이것저것 핑계 대고 변명만 할 게 아니라 자기반성부터 먼저 하라. 언제쯤 ‘고문’이 빠진 희망의 기사로 채워질까.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