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적십자사 75년, 시민과 함께 지켜온 인도주의
서정의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회장
우리나라의 적십자 운동은 1905년 고종황제의 칙령 선포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시련을 극복하고 상하이 임시정부로 면면히 이어진 뒤 광복 후 대한민국 국회가 1949년 대한적십자사조직법(법률 제25호)을 제정하면서 적십자 인도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 부산적십자사는 늘 부산 시민 곁에서 지역사회를 지키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인도주의 사업을 펼쳐왔다.
최근 창립 75주년을 맞아 주요 활동들을 정리하면서 부산적십자사가 광복, 6·25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고, 그 활동들이 적십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산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부산 시민과 함께한 75년의 역사 속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활동이 있다. 광복 직후에 조국으로 돌아오는 교포들을 지원하고, 6·25전쟁 중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을 도왔다. 특히, 전쟁의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적십자 인도주의 운동을 보급하기 위해 대한민국 RCY 운동을 시작하며 청소년적십자 운동 활동의 발상지로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시기에는 부산 적십자 산하의 3개 병원을 통해 무의촌 진료에 나서며 지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했고, 4·19혁명 때에는 부상당한 시민과 학생을 도왔다. 산업화 시기에는 전국에서 부산 지역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근로청소년들에게 RCY 활동으로 건전한 사회활동 기회를 제공했고, 저녁을 거르며 공부하는 근로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무료 급식소를 운영했다. 특히 근로 RCY 단원들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폐품을 모으고 바자 개최를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생명의 금고’를 만들어 수술비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75년 베트남 난민들을 수용하며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건강을 챙겼다. 이 활동은 모든 베트남 난민이 연고지를 찾아 떠나는 1993년까지 운영되었다.
태풍 사라, 루사, 매미 등 부산 지역에 큰 피해를 준 자연재해와 구포역 무궁화 탈선 사고, 김해공항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 사하구 신평동 산사태, 기장군 집중호우, 메르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늘 부산 지역의 재난 현장에는 부산적십자사가 이재민들과 함께했다. 이들의 고통을 나누고 빠른 일상 회복을 위한 손길을 더해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기가정 긴급 지원 활동,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보급, 희망 풍차 결연세대 돌봄과 같은 인도주의 활동도 시민과 기업, 기관의 공감과 관심, 지속적인 성원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부산적십자사는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더 나은 부산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부산 시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복지 사각지대를 밝히며 어려운 가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오는 12월부터 시작되는 2025년 적십자회비 모금과 매달 정기 후원 참여를 통해 지속가능한 인도주의 기반 마련에 주인공이 되어주시길 바란다. 작은 손길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함께할 때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더 큰 희망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올려다 본 푸른 가을 하늘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적십자 봉사원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