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전기 요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폭염·늦더위에 전기료 폭탄 아우성
정부 여론 눈치 4분기 요금도 동결
한전 적자 눈덩이 미래 세대에 전가

에너지 문제 국민 공감대 형성 필요
국가 미래 위한 요금체계 만들어야
제대로 된 차등전기료 시행 출발점

올여름 폭염이 지나간 자리에 전기료 폭탄만 남았다고 아우성이다. 8월 기록적 폭염으로 가정마다 치솟은 전기료에 이어 9월 전기료 폭탄 고지서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늦더위로 9월 전기 사용량이 한여름 수준의 가을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추석’이 아니라 ‘하석’이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9월 최대 전력 수요 평균이 78GW로 역대 9월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여름인 7월 최대 전력 수요(80.5GW)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주택용 전기료에는 사용량이 늘수록 높은 요금을 매기는 누진제가 적용된다. 다만 여름철(7~8월)에는 누진 구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전기료를 감면한다. 하지만 9월부터 전기료 할인 혜택은 사라진다. 에어컨을 똑같이 틀었어도 9월 전기료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후변화로 늦더위가 일상인 현실에서 혹서기 전기료 할인을 9월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부가 올 4분기 전기 요금을 동결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전력의 재무구조 악화가 발등의 불인데도 요금 인상을 감행하지 못했다. 정부가 여론 눈치를 보며 전기료 인상을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그런데 전기료 인상을 마냥 미적댄다고 될 일일까. 올해 6월 말 기준 한전 부채는 203조 원이다. 판매가격이 원가에 못 미치는 역마진 구조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자금 조달을 위한 회사채 발행 규모도 커졌다. 상반기 한전과 자회사가 이자 갚는 데 쓴 돈만 2조 2841억 원, 하루 126억 원꼴이다.

한전은 공기업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이야기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할 돈이다. 전기 요금을 정치적 이해로만 결정하는 게 전형적 포퓰리즘인 까닭이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게 국민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전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는 결국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할 에너지 비용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에너지는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로 부상했다. 인공지능(AI)과 미래 모빌리티는 막대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다. 기후변화에 맞선 에너지 전환은 이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이슈다.

전기료 폭탄이라는 수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기료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반면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낮은 전기 요금이 에너지 과소비로 이어지는 아이러니를 생각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게 더 근본적 문제다. 외국 유명 IT기업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게 무슨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전기료가 싸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이유다. 국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겨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참여하고 공감하고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전기료 폭탄을 말하지만 정작 아껴 쓴 만큼 돈을 돌려주는 정부 ‘탄소중립포인트’나 ‘에너지캐시백’에 대한 국민 참여는 미미하다는 사실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전기 요금에 담아야 할 메시지를 가장 잘 반영한 최근 사례가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따른 지역별 차등전기료다. 전기사업자가 송전·배전 비용 등을 감안해 지역별로 전기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것이다. 전력시스템의 효율성과 원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 등 전기 요금체계 중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정책이다. 에너지 정책에서 앞선 나라들이 이미 시행 중이고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중요한 제도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전력거래소의 ‘지역별 가격제 기본(안)’을 보면 이런 고민을 제대로 담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2026년부터 적용될 이 제도는 전국을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 3개 권역으로 뭉뚱그렸다. 원전이 밀집된 부산이나 전력 생산이 거의 없는 대전이나 같은 전기료를 적용한다. 초안이라고 하지만 출발이 이래서야 제도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2026년은 지방선거의 해여서 정치적 공방에 휘둘릴 우려도 크다.

원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잠재해 있는 상황에서 차등전기료는 어쩌면 국가 에너지 정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분기점일 수 있다.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 제도 취지를 살린 정교한 요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원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영구방사성폐기물처리장에 대한 논의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제대로 된 지역별 차등전기료 시행이야말로 에너지 백년대계를 위한 출발이 될 것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