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부산문화를 보는 다중 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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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세계적인 미술관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를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다. 대체로 지역문화 현실과 거리가 있고 충분할 만큼 토론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혹자는 ‘지역문화진흥법’이 명시한 협의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따진다. 차제에 부산시립미술관이나 현대미술관을 더 지원해 지역 미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마침 서울 63빌딩에 한화그룹이 2025년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을 운영하기로 하였는데 부산이 불필요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이 한시적으로 끝나는 시점에서 부산이 이어받게 되므로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한편 인천은 유치에 나섰다가 한화와 부산에 밀린 일로 당국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 찬반양론으로 단순화하는 과정은 크게 우려할 일이다.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한데 질문을 더하고 구체적인 답을 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가령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를 지역문화진흥법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범주 착오를 노정하고 있다. 이 법이 국가 스케일에서 각 지역의 문화를 진흥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하지만 퐁피두센터 부산은 글로벌 스케일에서 추진되는 네트워크 사업이다. 이를 통해 서울 중심의 일극 문화집중을 극복하고 부산 스스로 세계 속에 위치하려는 정책 의지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부산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로컬 스케일의 요구와도 다른 맥락이다. 더 나아가 지역 미술인의 낮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부양책이 급선무라는 로컬주의와 논리의 층위를 달리한다.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 둘러싸고 논란

지역문화진흥법 차원 접근은 범주 착오

글로벌 규모 네트워크 사업으로 봐야

일극의 국가 체제 극복할 대안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진취적 기상 필요

단일 아닌 여러 시선으로 지역 이해를

우리는 부산문화를 로컬 스케일, 국가 스케일, 동아시아 지역 스케일, 세계 스케일이라는 다중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도문화도시’ 사업은 로컬 스케일에서 발전시켜 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부산문학관이나 부산시립박물관은 로컬의 문화기반시설이다. 그렇다면 로컬리티를 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다중 스케일의 관점에서 근현대역사관이 동아시아 혹은 아시아라는 지역주의를 표방하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부산이 제국의 통로였고 아시아 지중해의 네트워크 도시이며 동아시아 평화의 증인이라는 점에서 시립박물관과 역할 분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국립해양박물관은 해항 부산을 기반으로 하면서 연안을 넘어 대양을 접속하는 거점이므로 로컬에서 아시아의 바다를 경유해 세계에 이르는 중층의 해양문화를 두루 아우를 수 있는 중추기관이다.

물론 로컬 스케일에 기반한 장르 단위의 문화시설이 로컬주의를 표방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언제든지 아시아와 세계를 호흡할 수 있는데, 그 토대가 로컬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각하지 않아야 한다. 범주 착오나 과잉 의욕에서 비롯한 각 스케일 간의 중첩과 갈등은 협의와 조정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조성할 부산문학관의 규모를 줄이면서 퐁피두센터 부산을 유치하려 하는가라는 형태의 질문은 오류를 낳는다. 부산비엔날레를 더욱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해서 퐁피두센터 부산을 유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영국에서 ‘리버풀 효과’를 만든 계기는 비틀스라는 세계적 문화 상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문화예술의 생산력은 그만큼 문화예술인의 노력을 요청한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가 남긴 상실감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한 부산의 도약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서울 중심 혹은 수도권 일극체제의 폐단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도 강남과 같은 ‘중심의 중심’이 있어서 로컬이 왜곡되는 모순이 적지 않다. 국가 스케일에서 일극체제를 극복할 거처는 모든 로컬의 활성화이지만 지역소멸이 운위되는 현실이 힘겹다. 여기에서 서울 일극을 향한 힘의 움직임에 부산을 맞세우는 일이 중요한데 메가시티와 글로벌 허브가 그동안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글로벌 허브의 대안은 연안을 넘어 대양과 만나고 있는 부산의 미래 전망으로 절실하다. 글로벌 시티로 가는 일은 경제와 문화, 교육과 산업의 모든 영역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로컬을 두텁게 인식하고 이를 책임지는 시민의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일극의 국가 체제를 극복할 대안을 찾으면서 아시아와 세계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기상이 요구된다. 자기중심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로컬의 가능성을 단순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다중 스케일로 여러 겹의 시선으로 지역을 이해하는 가운데 생산적인 출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2030 부산엑스포를 기대하였고 가덕도 국제공항 건립을 찬동하였듯이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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