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자기 지역구에 살지 않는 정치인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대다수 고위공직자 강남 아파트 소유
서울 집값 뛰는데 지역 미분양 속출
‘똘똘한 한 채’ 앞에 정치 도의 헌신짝

지역 출마 정치인마저 서울에 아파트
지역소멸에 대한 고민 기대할 수 있나
딴 주머니 찬 정치인들 공천 배제해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아파트가 두 채 있었다. 자신의 지역구에 하나, 서울 서초구 반포에 하나. 문재인 정부는 수십 차례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면서 고위공직자들에게 1주택을 권고했다. 대통령 최측근인 노 비서실장도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추어 보유 중이던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팔았다. 청주에 있던 걸로. 그 아파트는 134.88㎡(신고액 1억 5600만 원)짜리 널찍한 아파트였고 반포 아파트는 45.72㎡(신고액 5억 9000만 원)짜리 좁은 아파트였지만 네 가족이 부대끼며 살더라도 강남 아파트를 지키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이시종 충북지사와 대전 서갑을 지역구로 둔 박병석 국회의장도 서울 송파·서초에 있는 집 대신 자기 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들은 ‘권불십년’ 그리고 ‘강남 불패’라는 세간의 믿음을 몸소 실천한 것뿐이겠지만 손꼽히는 고위공직자들마저 자기 지역구를 버리고 강남을 선택하는 현실은 씁쓸했다. ‘똘똘한 한 채’ 앞에 정치적 도의나 지역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지방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이젠 아파트도 그런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인구 감소 충격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서울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지만 서울 밖에서는 ‘악성 미분양’이라고 할 수 있는 준공 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악성 미분양 주택은 전국에 1만 4856호 있었는데 그중 1만 1965호가 비수도권 주택이었다. 80.5%다. 일본도 인구 감소와 젊은 층의 도심 회귀 여파로 도쿄 인근 위성도시들이 유령 도시화한 전례가 있다. 도쿄 도심에서 약 30㎞ 떨어져 있는 다마(多摩) 뉴타운이 대표적이다. 이름은 뉴타운이지만 노인이 많아 ‘올드타운’이 된 다마 뉴타운은 우리나라 많은 도시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인구가 줄고 덩달아 주택 수요도 줄면 빈집이 는다. 지역 경제의 활력은 떨어진다. 사람들은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 ‘똘똘한 한 채’를 찾아 큰 도시로 떠난다. 그 정점에 서울이 있고 강남이 있다. 지역구를 둔 정치인이라면 이런 시대에 서울 강남에 맞서 제 지역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은 지역구에 말뚝 박고 그곳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월세살이로 대충 사는 시늉이나 하면서 권력자에 줄 잘 서서 다음 공천을 받으려고 한다. 전체 지역구 초선 의원 89명 중 41.6%에 해당하는 37명이 서울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를 비롯한 부동산 규제 지역에 아파트 등을 소유한 채, 정작 자기 지역구에선 셋방살이하고 있다는 뉴스가 그걸 방증한다.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어도 모자랄 초선부터 이 모양이라면 우리 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때아닌 호텔 논쟁을 벌였다. 조국혁신당 관계자가 먼저 자신들은 영광의 아파트를 빌려 ‘한달살이’ 선거운동을 펴고 있는데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호텔에 머물며 호화롭게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저격한 것이다. 이에 한 최고위원은 하루 6만 원대 3성급 호텔에 머문다며 반격했다. 선거를 도우러 온 사람들이 호텔에서 지내든, 아파트에서 지내든 무슨 상관이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정작 군수 후보로 나선 이도 영광에서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현 조국혁신당 영광군수 후보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영광에선 아무런 주택도 소유하거나 임차하고 있지 않다고 신고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8월 말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지역할당제를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대학 진학에 경제력과 거주 지역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그게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인위적으로라도 지역 안배를 해 해소하자는 것이다. 이 총재의 주장은 극심한 서울 집중과 지역소멸로 골병들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다. 지역구 국회의원부터가 강남으로 향하는데 어찌 국민에게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겠나. 이참에 출마 지역에 살지 않거나 강남 아파트같이 딴 주머니 차고 있는 정치인들은 공천부터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해 보면 어떨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꼴이라면 유권자들이 나서서 그런 걸 중점으로 살펴봐도 좋겠다. 예로부터 돈이든 권력이든 하나만 가지라고 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