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권의 핵인싸] 빛과 어둠,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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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눈귀 닫은 불통의 우리 사회
미지의 암흑세계 우주 같아
선입견 버리고 세상 접하길

비가 갠 하늘, 햇빛의 반대쪽에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무지개는 ‘무(無)’에서 창출되는 ‘유(有)’를 경험하기에 충분하다. 허공에 난데없이 나타난 총천연색이라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투명해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은 ‘모든 색’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것을 눈과 영상에 담아 빛나는 색깔로 간직하는 것과, 이것을 사진으로 인쇄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가 순수한 빛의 직접적인 경험이라면, 후자는 순수한 빛이 인쇄된 면에 반사(反射)된 효과를 보는 것이다. 색의 반사는 나머지 색이 모두 흡수됨으로써 나타난다. 즉, 모든 색이 합쳐진 투명한 빛으로부터 그 물체의 색을 제외한 모든 색이 ‘빠진’ 현상을 보는 것이다.

모니터나 스마트폰의 액정화면을 보면, 빨강-초록-파랑(Red-Green-Blue, R-G-B)의 조합으로 모든 색이 표현되고 있지만, 정작 프린터의 잉크나 토너에는 그런 색들이 없다. 그 대신 잉크나 토너에는 우리가 하늘색이라고 부르는 색에 가까운 시안(Cyan), 분홍색에 가까운 마젠타(Magenta) 그리고 물감으로는 어떤 색을 섞어도 만들어낼 수 없는 노란색(Yellow)으로 이루어진 하늘-분홍-노랑(C-M-Y)이 있다.

컴퓨터의 그림판에 들어가서 색깔을 한번 만들어보자. 거기서 R-G-B 패널을 각각 0에서 255까지 총 256가지씩, 총 1600만 8000가지의 조합으로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모든 색을 만들어낸다. 모두 최대로 해서 합치면 우리가 보는 ‘무색(백색광)’이 된다. 흔히 우리가 어려서 배운, ‘빛의 삼원색을 모두 합치면 흰색이 된다’는 그것이다. 모든 색을 다 갖고 있어서 그 ‘어떤 색’도 아니다. R-G-B를 모두 합친 그 백색광에서 특정색(R, G, B 중 어느 하나)을 0으로 만들어 하나씩 빼 보라. 그러면 만나게 되는 색깔이 바로 C-M-Y이다. 그래서 C-M-Y는 각각 R-G-B의 반(反·anti)색체계이며, 감산(빼기)의 색체계라고도 한다. C-M-Y를 합치면 백색광의 정반대인 ‘검정’이 되는데, 이것은 동시에 아무런 빛이 없는 ‘암흑’의 상태다.

“오롯한 ‘암흑(검정)’을 본 적이 있는가?” 교수님의 난데없는 질문에 블랙홀 이야기를 하시려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면도날을 여러 개 겹쳐서 앞에서 보라는 것이었다. 즉, ‘들어가는 빛은 있는데 날카로운 날 때문에 빛이 안쪽으로만 반사되어 도무지 눈으로 되돌아오는 빛이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 건물들이 있는 풍경화를 그리는데, 건물들의 창문을 온통 창에 비친 하늘과 구름처럼 희뿌옇게 그린 적이 있었다. “모든 창이 실제 그렇게 보이더냐”는 미술 선생님의 지적에 비로소 있는 그대로 쳐다본 건물의 창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검었다. 대낮 건물들 대부분의 창은 빛을 반사시키는 게 아니라, 들어간 빛을 그대로 모두 먹어버린 검은빛이다. 우린 얼마나 어설픈 선입견으로 왜곡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낮에 밖에서 보는 건물 대부분의 창문은 검은 반면, 안에서 보는 창문은 없는 듯 투명하다. 같은 창문도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빅뱅’의 순간, 아무것도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우주는 순식간에 물질과 반(反)물질로 가득했다. 초기우주는 방금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들의 엄청난 에너지로 들끓는 용광로와 같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캄캄했다. 전하를 가진 소립자들의 엄청난 상호작용 때문에 빛조차도 뚫고 지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주는 원자와 같은 중성입자들이 구성되기 전까지 약 40만 년 동안 불투명했으며, 이후 실제 핵융합으로 ‘별’이 형성되기 전까지 약 10억 년 동안 실제 광원이 없는 암흑이었다.

이후 투명해진 우주를 통해 우리는 많은 지식의 지평을 넓혀왔지만, 아직도 현대 인류는 중력을 통해 우주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물질 총량의 불과 5%만을 파악하고 있다. 우리에게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나머지를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최근 우주의 가속팽창이 관측되면서 암흑물질보다도 더 많은 암흑 에너지가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아직도 설만 무성할 뿐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다. 과연 어린 시절의 만화 주제가만큼이나 우주는 미지의 암흑세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너무 많은 소통들이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아우성이 돼버린 탓인지, 역설적으로 양극화된 불통의 아성에 갇혀 눈도 귀도 모두 닫힌 탓인지, 더욱더 늘어가는 분쟁과 심화되는 기후위기 속에서 답답하게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회나 우주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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